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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_GH/PBS&맥체인

맥체인 2월 20일

by 우루사야 2025. 2. 20.

5너희 생각에는 너희가 나보다 더 낫겠고, 내가 겪는 이 모든 고난도 내가 지은 죄를 증명하는 것이겠지.6그러나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 나를 궁지로 몰아넣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나를 그물로 덮어씌우신 분도 하나님이시다.7"폭력이다!" 하고 부르짖어도 듣는 이가 없다.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귀를 기울이는 이가 없다.8하나님이, 내가 가는 길을 높은 담으로 막으시니, 내가 지나갈 수가 없다. 내 가는 길을 어둠으로 가로막으신다.9내 영광을 거두어 가시고, 머리에서 면류관을 벗겨 가셨다.10내 온몸을 두들겨 패시니, 이젠 내게 희망도 없다. 나무 뿌리를 뽑듯이, 내 희망을 뿌리째 뽑아 버리셨다.

욥기 19장에서 욥의 항변 중 한 대목입니다. 욥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도저히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과 질책이었음을 말합니다. 이에 대한 소발의 답변은 "하늘이 그의 죄악을 밝히 드러내며, 땅이 그를 고발할 것이다"라는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고차원의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해서 욥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소발은 옆에서 너무나도 단순한 답변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시어머니 옆에 선 시누이가 더 얄밉기 그지 없습니다. 고통스럽고 아파하며 가슴을 치고 있는 자 옆에서 깐죽이는 것만큼 더 매정한 것은 없죠. 그렇습니다. 욥의 질문은 인간의 머리로 당장에 해답을 내릴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발은 자신의 제한된 사고능력을 부끄럽게 여기며 입을 닫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에 대해서 고민해야 했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이 부르실 때 모세의 소극적인 모습이 더 낫습니다. 그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이 질타하셨지만,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고 당당한 소발보다 낫습니다. 모세는 그나마 하나님이 가르치실 재량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모세를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4모세가 그것을 보려고 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모세가 대답하였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5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출3)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모세를 부르십니다. 불타도 타지 않는 떨기나무로 부르십니다. 이름이 "스스로 있는 자"라는 기상천외한 분으로 오게 하십니다. 이미 400년도 더 된, 죽은지 오래된 선조들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곳이 무언가 독특한 곳이고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곳이니 신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마치 "네가 살던 세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너에게 일러줄테니, 그 세계에서의 사고방식은 떨어버리고 오너라"고 하시는듯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 또는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당장 내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일과 그 일에 대해서 내 힘으로 풀어낼 수 없기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힘으로 하나님이 해결해주시기를" 바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떨어내야 합니다. 오히려 욥과 같이 궁금증을 하나님께 던지거나, 모세와 같이 자신을 낮추는 것이 적절한 태도죠. 소발과 같이 지금 자기가 어떤 문제를, 어떤 신앙을, 어떤 고민을 해야하는지 알지 못한채로 마구잡이로 떠들어대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서인지 바울은 자신이 말할 것과 말하지 말 것에 대해서 구분했습니다. "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고전7) 그리고서 바울은 "부르심대로"라는 말을 7번이나 등장시키면서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신앙양심의 자유를 가지고 살아갈 것을 권면하죠. 

소발은 결코 욥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욥의 부르심에 대해서 욥은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것은 욥이 감내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을 소발은 곁에서 그의 부르심에 그가 합당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하고 중보하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모세 또한 그의 부르심에 단번에 수긍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계속해서 부르시고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도 그러하셨죠. 네, 각자가 가진 소명과 부르심에 대해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사람을 부르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조력입니다. 결코 우리에게 그 책임이 막중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선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눅6) 우리 각자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부르심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방법과 길은 서로 다 다릅니다. 그 길을 응원하고 기다려주는 것, 그렇게 서로가 하나님과 닮아가는 것을 지켜보며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과 그 사람, 그리고 이 시간에 대해서 인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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