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은 제발 저리기 마련.
창세기에서 형 에서를 만나러 가는
야곱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형의 유산상속권을 거짓말로 훔쳐간
동생이 20년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때
야곱은 세 무리로 나누어 차례로
형 에서 쪽으로 보내며,
형의 심기를 떠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형을 만났을 때
형은 그간의 앙금이 다 풀렸는지
야곱을 끌어안고 환대해줍니다.
그렇게 긴장감 넘치는 야곱의 귀환은
허무하게 끝나고야 맙니다.
예수님은 사탄과 사탄이 싸우면
그 집도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한 집안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위할 때 세워집니다.
에스더서에서도 야곱과 같이 오금이
저리는 상황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에스더라는 여인은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명언을 남기죠.
그의 삼촌 모르드개는
“당신이 이 상황을 무시하려 해도,
유대인 살길은 다른 곳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그 때 당신은 망할 것입니다.”
(에 4:14, 의역)
아하수에로는 하만의 간계에 당해
자신의 아내 출신민족을 몰살 할 뻔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인장으로
허가한 조치를 상대하기 위해 유대인에게
맞서싸울 조치를 자신의 인장으로 허가합
니다. 그렇게 아하수에로는 자신의 권위를
지켜냈고,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에서
생명을 구해 마침내 가나안으로 귀환합니다.
창세기 야곱의 귀환과
에스더서를 거쳐 온 유대인의 귀환을
가능케 한 것은 하나님의 개입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위하고자 할 때 한 집안이,
나라와 민족이 세워집니다.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롬 3:1)
바울은 우월선민의식으로 가득찬
동족 유대인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서신 로마서를 비롯해
대표적인 신약성경에 포함된 서신서
대부분을 이 기조로 말하죠.
바울은 자신의 동족을 무너뜨리는
사람이었는가.
조금 더 살펴보면 유대인의 선민사상을
무너뜨릴 때 이방인, 그러니까 비유대인들에게
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갈 수 있다고
그는 말하고자 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이라고
논증하죠.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지리라
기독교의 신, 예수는 신의 자리에서
영원히 인간이 되기로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원리로 높아지는 길은
낮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곱도, 에스더도, 바울도, 유대인도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낮아질 때 높아졌다고
성경은 밝힙니다.
당당한 사람은 자연스레
낮은 자리로 갈 줄 압니다.
자연스레 다시 올라갈 길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당하지 못한 사람은
내려가야 할 때 오금이 저리고
제발이 저립니다. 종국에는
보이지 말아야 할 모습,
처참한 처신을 보입니다.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Throw in the towel.
복싱경기에서 그로기상태에 있는
선수를 대신해서 코치는 타월을
던짐으로써 경기를 중단시켜
패배를 인정하여 선수가 더 타격
당하지 않도록 보호합니다.
요즘 곳곳에서 들려오는
하락세 속에서 탄식이 들려옵니다.
내 돈이 아닌 돈으로 투자해서,
내 상황에 안맞는 것을 구매하다가,
내 자리가 아닌 곳에 앉았다가.
내 때가 아닌 때를 더 누리려다가.
물론 혼자서 나의 위치를 알아
내려올 때, 낮아질 때,
떠나야 할 때를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땐 타월을 던져줄 주변인이
필요합니다.
죽음이라는 친구를 가까이 두어서
내려가야 할 때를 알았던
한 사람의 유언이 지금
어울리는듯 합니다.
나는 이제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이미 충분히 오래 살았고,
이제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
조지 버나드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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