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복음으로 사는 새로운 삶에 대해 바울은 이번에는 실제적인 문제를 건드리게 됩니다. 로마교회 안의 문제를 복음으로 어떻게 풀 수 있을까에 대해서 논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복음은 문제를 해결하게끔 합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 서로의 갈등을 어떻게 풀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6절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가 눈치보고 신경써야 할 존재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로마교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고집을 보며 서로의 믿음에 대해서 논하기 시작했습니다. 1-3절입니다.
1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3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연약한 지체의 모습은 유혹에 쉽게 정복당하는 취약한 신자가 아니라 우유부단과 망설임으로 가득 차 있는 확신이 없는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3절에서도 믿음이 연약한 그 지체를 "하나님이 받으셨음"이라고 선을 긋습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믿음에 대해서 교회 안에서 너희가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실제적으로 로마 신자 공동체인 로마교회에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채식만을 먹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먹었고, 또 유대인들 중에는 율법에서 금한 것을 입에 대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먹는 것에 대해서 서로 비판하지 말아야 할 근거는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고 구원하셨다는 것은, 나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 됩니다. 4절입니다.
4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우리 장로교 헌법정신 중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신앙양심의 자유"입니다. 한 개인의 신자 안에 성령 하나님이 내주하고 계신다는 믿음은 그 사람의 판단을 존중해야 하는 근거로 작용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의 믿음에 대해서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물론 신자의 잘못에 대해서는 치리를 해야하겠지요. 그런데 그 전에 전제는 "성령의 내주하심"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시면 주인이 그리했으니 우리는 그 주인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판과 비난 전에 서로의 존중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 후에 공동체에 해가 되거나 믿음을 악용하는 언행에 대해서 치리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5-6절입니다.
5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요즘 계속해서 사순절에 대해서 의견이 많습니다. 더 극단적인 분들은 성탄절에 대해서도 언급하시더군요. 과연 이것을 지키는 것이 성경적이냐는 질문입니다. 신학적으로 객관적 하나님의 사역을 성경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십자가 사건을 말합니다. 이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누구는 더하고 누구는 덜하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우리의 기준이 되어줍니다. 마지막 하나는 성령 하나님의 주관적인 사역입니다. 각 사람의 상황과 환경, 기질, 개인적인 부분에 맞춰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신자는 자신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과 함께 자신의 기준을 세우게 되는 신앙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겁니다. 물론 여기에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성경과 구속의 십자가라는 복음 안에서 입니다. 그 속에서 내가 사순절을 귀하게 여길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성탄절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매일이 부활절이고 사순절이고 성탄절로 보낼 수도 있지요. 그렇게 우리 안에는 율법이 완성이 되었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가장 큰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신앙 양심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복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타인을 바라볼 때 영혼을 바라보십니까 아니면 내 기준에 맞춘 사람이 보이십니까? 그럼 우리는 복음의 눈을 가진 자입니까? 이 질문을 나에게 던지면서, 내 안에 복음의 살아있음을 확인하시고 영혼을 품는 풍성한 사랑의 하루를 보내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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