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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새로운 자본주의정신 ch3-A

by 우루사야 2021. 9. 7.

"일하면서 일어나는 자기비움의 더욱 극단적인 형태는 거의 기계적인 반응을 권장하고 강요하는 작업과정에서 발생한다. 당장의 일은 단순히 그 외의 다른 생각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생각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숙고하는 것은 당장의 업무 수행을 방해하는데, 노동자는 그저 끊임없이 주어지는 입력값의 변화하는 자극에 대하여 적절하게 기술된 방식에 따라 가능한 한 빠르게 반응해야 한다. 콜센터가 좋은 사례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가장 취약했던 환경은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었다. 그말인 즉슨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기업은 금융지배자본주의 정신에 따라 최대의 수익화를 위해 노동자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한 판단은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취약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 상황이 이어진지 2년 정도 되는 시점에서 많은 기업들이 "재택근무환경"을 추진하려고 노력한다. 노동자가 좀 더 유동성있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 이제 생각한다는 것이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그렇지도 않다. 왜냐하면 위와 같이 비인격적인 노동환경은 대부분 하청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서쪽에서 일어났던 직장내 대규모 전파는 하청이 많은 콜센터에서 많이 일어났다. 과밀도, 기계적 업무환경, 유동성 없는 동선 등을 구축한 원청은 이 사태 속에서 어떤 책임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개신교 노동윤리는 공공연하게 다른 사람의 뜻에 따르고 만족을 미루는 것 둘 다를 포함하는 어떠한 근면 유인책만큼이나 취약하다.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에 대한 보상-고용주의 뜻에 성실하게 따르는 장기 고용을 통한 점진적인 임금 인상과 승진-을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것은, 직장 바깥의 손쉬운 신용 대출의 끊임없는 유혹과 쉴 새 없는 광고가 부추기는 삶과 서로 상치되는 것처럼 보인다......사업가적 자아로서 바라보는 자신의 인생 기획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판단될 때, 그에 대한 헌신은 피상적이거나 단지 표면적 위장이나 쇼가 아니라 그들의 인격 안에 자리 잡은 어떤 것,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 그런 식의 개인적 헌신은 열심히 일하라는 회사의 요구에 대해 어떤 망설임이나 제약도 없이 헌신하게 만든다." 

두려움이나 제약에 따른 근면과 성실이라는 가치의 향상은 일회적일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기업은 노동자로 하여금 스스로 근면하고 성실해야 한다는 자아의식을 구축하게끔 해야 한다. 그런데 개신교가 노동가치관에서의 가스라이팅을 했다면? 근면과 성실이 혹시 뜬구름이었다면 ? 속 빈 강정으로 가득한 노동자의 삶으로 설교가 내밀었다면...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근면과 성실은 무엇을 위한 것이고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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