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는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 본 고향 갈릴리 땅에서의 사역과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의 시간, 그리고 그 중간에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가면서 일어난 사건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는 이 부분,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누가복음은 이 여정을 굉장히 자세히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51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51절에 보니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네, 예수님은 공생의 시작과 끝을 스스로 정한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계획과 밑그림대로 수행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때가 가까와가니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게 됩니다. 52-56절을 보시죠.
52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53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54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55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56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 가운데에는 사마리아 지역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으로 취급하던, 조상은 같지만 혼혈족으로 신앙을 저버린 이들이라고 평가하던 사마리아인들이 살던 지역이죠. 대부분 유대인들은 힘들더라도 이 지역을 돌아서 갔지만, 예수님은 이 지역을 그대로 통과해서 가기로 하십니다. 문제는 사마리아인도 유대인들을 반대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공동체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던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더 발생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사마리아인들을 향해서 "불을 명하여 멸하소서"라는 제안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을 호되게 꾸짖으시죠.
어제도 예수님께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던 자들을 제지해야 한다고 말했던 요한이 오늘도 등장합니다. 예수가 떠나가야 할 시간은 점점 가까와가는데, 수제자 3명 그룹의 한명이었던 요한의 부족한 모습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요한뿐만 아니라 같은 수제자 그룹에 있었던 그의 형제 야고보까지 함께 동종하는 것을 보니 예수님의 심정은 더 착잡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제안을 꾸짖으신 이유는 그들의 "자기중심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인들도 돌보시고, 더 나아가 심판하시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야고보와 요한의 제안은 극히 자기 감정과 사고에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본문에서 제자들과 싸우고, 무리들과 사도그룹을 차별화하여 높이는 모습에서 아마도 야고보와 요한은 두드러진 모습을 보였을 겁니다. 다른 복음서에서 이 형제들을 향해 예수님이 "우뢰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 그들이 이번에는 여타민족이라고 여겼던 이들을 향해서 구원의 여부까지도 판단하려는 모습입니다. 낮은 자리로 가야 한다는 방향성에도, 섬겨야 한다는 사역의 정체성도, 하나님 중심으로 구원을 생각해야 한다는 사역관도 모두 어그러진 상태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보다 자신의 계산이 먼저 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누가는 몇가지 사건을 통해 제자는 무엇이 먼저여야 하는지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소개해줍니다. 57-62절입니다.
57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58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59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60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61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62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이 구절들은 단순하고도 표면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계속해서 실수를 남발하는 제자들 앞에서 "과연 하나님 나라를 향하는 예수의 제자는 어떤 자인가"라는 질문의 답변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번째, 한 사람이 따르겠다는 말에 예수님은 제자의 생활고에 대해서 말하십니다. 특히 "안정적 거처"의 부재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의 제자는 권련을 소유함에 있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나의 집이 있음을 고백하며 복음전파를 위해 오히려 핍박받으며 손해볼 각오를 하는 것에 있습니다. 둘째, 두번째, 지병으로 수년 후에 죽을 아비의 장례에 대해 걱정하는 이를 향해서 하나님 나라 전파와 비교할 것이 못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가족의 장례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의 생명을 구하는 지금 당장 노력할 수 있는 일보다 죽어서 어찌 할 수 없는 영혼의 일을 우선시하는 이들을 향해서 비판하고자 하심입니다. 세번째로, 가족과의 작별인사를 허락하는 이에게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라는 자극적 메시지를 주십니다. 가정이야말로 살아있는 영혼이며, 하나님이 주신 공동체입니다. 그럼에 있어서 예수님의 명령이 너무나 가혹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도 예수님은 가정을 버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이 제자의 마음에는 두 갈래 사이에서 번민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두 가지를 같이 우선순위에 둘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 다음 가정이어야지, 가정 다음 하나님일 수는 없다는 의미죠. 이상 세가지의 제자도에 대해서 언급하시며 굉장히 강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이는 이 세사람에게뿐만 아니라 12사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메시지였을 겁니다. 신앙은 믿음입니다. 내가 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그 믿음의 대상으로부터 분명한 삶의 결실이 있음을, 내 삶을 더 낫게 인도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자기중심적인 사역태도를 비판하십니다. 내 감정과 생각, 내 가족과 세속적인 일들, 신앙을 통해 얻을 세속적 안락은 결코 우선시 될 수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는 불을 내려 심판할 수 있는 권세가 있음에도 인내하셨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누구인지도 판단하실 수 있는 권세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를 따라가는 제자의 삶이겠습니다. 그 믿음의 삶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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