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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누가복음_하나님의 아들

눅 9:18-27

by 우루사야 2024. 2. 22.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가 과연 누구인가? 예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가치와 영향력을 갖게 하는가?'와 같은 질문에 답을 내려주는 본문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직접 이 질문을 던지십니다. 18절을 보시죠.  

18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네. 예수님은 제자들과 앞으로 생겨날 교회의 방향에 대해서 명확하게 하고자 하십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예수를 보이는 모습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되었습니다. 또는 소문으로 또는 다른 누군가의 해설이나 평가로 이해해서는 안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생각과 주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노란색을 보더라도 누군가는 샛노랗다, 또 누군가는 누렇다, 또 누군가는 누리끼리하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각자의 생각이 다 다르고, 그 생각대로 판단할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보이는 모습이나 펼쳐지는 기적의 현상만을 가지고 예수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본문들 속에서 말씀하실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하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다리역할로 인식하고 계셨습니다. 즉 자신이 목적이 아닌 것을 알고 계셨고, 하나님과 인류가 직접 관계맺고 언약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겁니다. 예수의 목적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회복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라고 물으셨던 것이죠. 제자들의 대답을 보시죠. 19-22절입니다. 

19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20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21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22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제자들은 우선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수가 예전 위대한 선지자와 같은 자라고 소문이 퍼졌습니다. 우선 최근에 헤롯왕으로부터 참수형을 당해 죽은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소문은 900년 전에 죽지 않고 승천한 엘리야가 다시 왔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여튼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망이 담긴 바램들이 온갖 상상의 날개를 달고 전국에 퍼져있는 것이지요. 로마압제 속에서 위대한 지도자역할을 해줄 선지자를 바랬던 이스라엘에게 예수의 등장은 너무나도 바랬던 순간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시 물으십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어떻게 보느냐?" 그 때 베드로가 유명한 신앙고백을 하죠. "하나님의 그리스도" 여러분이 잘 아는 구절은 마태복음에서 등장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이니이다"일 겁니다. 누가는 베드로의 고백을 축약해서 하나님의 그리스도,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내기로 약속했던 그 리더. 가장 궁극적인 리더인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같은 의미라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어쨌든 예수님이 들으시기에 흡족할만한 고백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뜨뜨미지근합니다.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이전에 예수님이 병자들을 치료하시거나 죽은 아이를 살리신 다음에 그것을 전하지 못하게 하신 것은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을 단순히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으로만 퍼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죠. 그런데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라고 말하지 못 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뒷 구절에 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고난을 받고 종교지도자들에게 죽임을 당해야 하는 일들이 남았다고 말해주십니다. 그리고 3일 후에 부활해야 그 일이 마쳐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는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여 부활하는 예수로 전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질병, 마귀, 죄를 꾸짖는 예수가 종교지도자들에게 져서 죽었다며 사람들이 예수에 대한 믿음을 져버릴까 하셨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승리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예수의 모습은 모든 것을 이기시고 승리케 하시는 구원자셨던 것이죠. 23-27절입니다. 

23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4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25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26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27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그러나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한가지 과정을 함께 해야 함을 알려주십니다. 부활 전에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은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네. 부활승리는 그냥 이뤄지지 않습니다. 죄로부터의 탈피과정. 아프고 힘든 과정을 건너야만 합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그간 내가 몸담아 왔던 죄의 세계로부터의 탈피요 탈출입니다. 내가 그간 적응했고 이해했고 수긍했던 모든 것들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아프고 힘듭니다. 그러나 더 아프고 힘든 과정들을 예수님께서 담당해주시니, 우리는 우리 자신만 신경쓰면 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3절에서 나를 따른다는 것은 첫째, 자기를 부인. 둘째,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그전에 몸담았던 죄의 세계를 부인하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믿음이라는 십자가,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과정 이후에 부활승리가 주어진다는 것이죠. 물론 이것이 싫다면 자기자신을 믿으며 살아가도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자기 목숨을 자기가 책임지고자 하는 자는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시죠. 그러나 예수를 믿고 죄로부터의 탈피과정인 믿음의 과정을 겪는 자는 구원받을 것임을 말씀해주십니다. 

물론 이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겁니다. 예수가 죄에게 승리한 것이지 내가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가 와서 인류의 지위가 회복되고 높아진 것이지 내가 그것에 동참했는지는 또 다른 별개의 문제입니다. 예수를 따르며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는 "믿음의 과정"에 가려고 할 때 아직 죄의 세계와 마귀는 그 믿음을 훼방하려고 할 겁니다. 핍박하고 조롱하며 무시할 겁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 과정을 잘 이겨내는 자는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도리어 자랑하고 선언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부끄러워 한다는 것은 믿지 못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추정, 상상, 추론에 근거하여 마지못하고 자신없이 말하며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지 못함이요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에 대해서도 진실된 마음이 없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나라가 이미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한 자가 예수를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확인하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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