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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누가복음_하나님의 아들

눅 8:49-56

by 우루사야 2024. 2. 19.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제 야이로의 딸과 혈루증 여인을 치유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을 살펴보았습니다. 누가는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 어떤 의미인지 계속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기준입니다. 기준의 권위로써 우리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칩니까? 죽어가던 인생이 살아난다는 겁니다. 귀신에게 붙들린 인생에서 귀신을 내쫓고 자유한 인생으로, 질병에 붙들려서 짓눌린 인생에서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으로 말이죠. 이것들은 모두 죄의 결과들입니다. 그 근거가 되는 죄를 해결하러 예수는 이 땅에 오신 기준되십니다. 그런 점에서 야이로의 딸 치유과정의 남은 이야기를 마저 살펴보시죠. 49-51절입니다. 

49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50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51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혈루증 여인에게 시간이 지체된 바람에 결국 소녀가 죽게 되었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이 상황을 모르셨을까요? 아셨겠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혈루증여인과의 만남을 소녀를 살린 뒤에 가져도 무방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굳이 혈루증여인과의 대화를 마치시고 소녀가 죽는 그 순간까지 지체하셨던 것이죠.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으로 가셨던 것이기에,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자신의 딸이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하나님을 과연 믿을 수 있느냐,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분이다! 라고 권면하시는 것이죠.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서 계속해서 우리가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기준이 되실 때에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기준이 되시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혈루증 여인이 믿음을 가지고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신앙으로 나아옴으로써 그 어떤 의사도 치유하지 못한 것을 치유케 하는 병마를 이기는 예수의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야이로의 딸을 통해서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옴으로써 다 죽은 자가 다시 살만큼 생명을 좌지우지 하는 예수라는 것까지도 말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계속 반복되는 것은 "믿음"입니다. 내가 예수를 향해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예수를 어떤 기준으로 삼고 있느냐고 말이죠. 52절부터 이어 보겠습니다. 

52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53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54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55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56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아이의 부모, 3명의 제자만을 데리고 죽은 야이로의 딸에게로 갑니다. 가면서 장례를 치르러 온 동네 마을 사람들에게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이들이 장례를 치르러 올 정도면 죽은 상태가 확실한 것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정도였을 겁니다. 눈에 보이고, 코에 호흡이 없는 것이 손가락에 느껴지고, 체온이 점점 떨어지는 것이 만져지는데도 예수가 이런 말을 하니 비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는 이들에게 "예수의 권위"를 설명하시고자 일부러 늦게 오시기까지 했습니다. 이 타이밍에 예수의 권위를 가르치고자 말이죠. 그래서 예수는 야이로의 딸을 다시 살리시고 나오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 한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가르치고자 이런 상황을 만드셨지만, 또 그 광경을 직접 보지 못하게 하십니다. 또 야이로의 부모에게는 눈으로 본 이 광경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까지 하십니다. 지금 예수가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기준과 권위를 가지고 인류 가운데로 오셨는지 알려주고자 함인데, 사람들은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현상만에 주목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에게는 일어난 일을 전하라고 하셨고, 혈루증 여인과의 일화는 사람들이 보는 현장 앞에서 굳이 설명하고자 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네, 예수님이 치료하시는 과정과 절차는 그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꼭 맞게 하십니다. 치료하는 현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치유의 근원이 되시고 기준되시는 예수를 바라보게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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