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누가복음 7장에서 누가는 계속해서 예수공동체원으로써 합당한 자가 누구인지를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구약시대 인물 중 메시야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던 세례요한이더라도 예수 이후 주의 은혜의 해를 누리는 이방인과 과부보다 클 수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결론이었습니다. 조건이나 자격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뒤를 따르는 사람인가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런 또 다른 한 사람을 누가는 우리에게 소개해줍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36-39절입니다.
36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37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38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39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님이 바리새인에게 초대를 받아 함께 교제하실 때였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이라면 그 당시 가장 많이 비판받던 종교지도자일찌라도 예수님은 그들의 요청에 응답해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에 초대받지 않았지만 찾아온 한 여인에게도 예수님은 응답해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이 두 사람이 예수님께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모습을 누가는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죠. 그 여인의 이야기가 좀 더 자세하게 소개됩니다. 죄 지은 여자라는 의미에서 성적인 범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녀가 향수가 든 옥합병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습니다. 그런데 그냥 붓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발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머리카락으로 닦습니다. 하지만 그 때 바리새인은 결이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인을 향한 비판과 편견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향하여 시험하고자 하는 마음까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네,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초대했으면서도 예수에 대한 믿음이나 긍정의 마음이 아니란 알 수는 없지만 부정적인 다른 마음으로 인해 예수를 초대했던 것이죠.
누가는 이런 구도에서 무엇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이방인, 과부, 죄지은 여인까지 모두 예수를 향한 진심을 가진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 되는데 있어서 어떤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바리새인은 예수를 향한 진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비교대상으로 밖에는 소개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눈물을 흘리고, 예수를 향한 경외와 사랑으로 자신이 가진 고귀한 것을 드리는 그 마음을 누가는 우리에게 소개해줌으로써 예수를 따르는 마음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따르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여인처럼 고귀한 것을 드려야, 눈물을 흘려야, 많은 사람 앞에서 무언가 행동으로 보여야한다는 요행으로 예수에 대한 신앙을 치부하지 않길 바랍니다. 지금 누가는 "예수를 향한 진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뒤따를 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대표자이시며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알려주시는 분"이라는 진심과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이상황에서 예수님이 베드로를 불러 한 이야기를 갑자기 해주고자 하십니다. "빚 탕감을 받은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비해서 10배 탕감을 받았는데, 누가 더 진실하게 감사하다고 말하겠는가, 그렇다. 더 많이 탕감받은 자가 더 감사하는 것이 옳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를 왜 갑자기 하시는 것일까요? 바리새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다른 이를 비판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다 못해 죄사함을 받기 위해 진심으로 예수님을 죄를 사해줄 수 있는 분으로 여겼습니다. 네, 이것은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47-50절입니다.
4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41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42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43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44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45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46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48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49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50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자격이나 죄지은 여인의 헌신을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다. 47절에 "그의 사랑함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정리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질문이 듭니다. 많은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 우리는 더 심각한 죄를 저질러야 한다는 겁니까? 물론 사회적으로 죄의 경중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태생부터 아담이라는 죄의 대표자 아래에서 태어난 죄의 시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행한 모든 일이 죄의 사회와 죄의 국가의 번영에 보탬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신 죄사함이 많다는 것은, 예수님께 진심으로 다가와 죄의 시민에서 하나님의 시민으로 회개하며 돌아오는 자, 예수님을 전심으로 대하며 회개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죠.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적당히 대했습니다. 초대는 했지만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했지요. 그러나 여인은 예수님을 진지하게 대했습니다. 죄를 사해주실 수 있는 분으로 여겼습니다. 이 상황을 두고 예수님은 영적원리를 설명해주셨던 것이죠. 네, 예수님은 병마를 꾸짖고, 귀신을 내쫓고, 이제 죄를 사하시는 분으로써 소개되어졌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류의 지위를 높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사함을 선언할 수 있습니다. 기도함으로써 병마를 내쫓습니다. 말씀의 원리로써 마귀를 내쫓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자유케 해주시고 높여주신 우리의 지위를 가지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러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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