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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누가복음_하나님의 아들

눅 5:17-26

by 우루사야 2024. 1. 29.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써 우리의 지위가 바뀌었습니다. 특히 인류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질병과 마귀와의 관계를 해결하심으로써 우리는 이것들을 향해 꾸짖을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바로 "죄"라는 녀석과의 관계입니다. 질병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우리 몸에 존재하는 것이고, 마귀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그의 존재와 영향력에 대해서 주의를 주고 있지요. 그 중에서도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도 존재도 명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너무나도 인류를 옭아매었던 "죄"라는 녀석은 우리를 너무나도 괴롭혀왔습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죄악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19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20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21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롬7, 새번역) 그렇습니다. 죄는 우리감각으로는 결코 인지할 수 없는 더 나아가 있다고 말하기도 힘든 존재이면서도, 분명하게 우리를 짓누르는 존재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그 죄까지도 해결하러 오신 분이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또 다른 병자를 고치시면서 "죄사함"에 대해서 이야기하십니다. 함께 살펴보시죠. 17-20절입니다. 

17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18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19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20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여러분이 잘 아시는 지붕을 뜯고 예수님께로 다가온 중풍병자와 그의 지인들이 벌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지붕을 뜯고 왔을까요? 19절에 보니 '무리때문에'라고 되어 있네요. 사람이 너무 많았던 것이죠. 그 뒤에 보니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양해를 구하면서 예수님께로 갈 수 있는 정도의 무리가 아니라 아예 사람과 사람이 낑겨서 예수님 한번 보고자 몰려있는 상황인데, 예수님은 집 안에 계시니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차라리 지붕을 뜯어 예수님께로 내려보내자라고 판단한 것이죠. 

여기서 질문이 한가지 생깁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까지 해야만했던 것일까요? 이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침상채로, 들것채로 메고 왔던 사실을 기억해보죠. 중풍이 다리 한쪽으로만 온정도가 아니라 걸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온 것이죠. 이만큼 그들은 절실했기에 예수를 향해서 서슴없이 또 거침없이 지붕을 뚫는 한이 있더라도 나아온 것이죠. 그리고서 예수께서 가장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냥 병을 고쳐주시기만 하면 되는데 "이 사람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이죠. 이로보아 죄와 병이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병자치유에서 맹인의 증상에 대해 "3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로 보아 한 사람이 뭔가 죄를 지어서 벌로 병을 받는다는 도식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인류를 짓눌러온 죄로 인해 인류의 육신은 점점 노화가 빨리 진행되어 가고 있던 것이 예수로 말미암아서 죄사함이 주어지고 병이 떠나간다는 영적원리로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네, 예수가 이 땅에 오심으로써 우리는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의 지위에서 우리는 마귀와 질병을 향해서 꾸짖을 수 있습니다. 바울과 같이 죄도 꾸짖을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신 것이 바로 우리의 대표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런 복음의 원리를 깨닫지 못했던 이들, 특히 예수를 보러 온 율법학자들은 의문을 제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예수를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21-26절입니다. 

21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22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23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24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25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26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그들은 죄를 사한다는 것 자체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한 인간이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래서 신성모독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들이 씌운 이 죄명은 나중에 예수를 사형대 십자가에 올려놓은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됩니다. 그런점에서 21절에서 율법학자들이 '이건 신성모독 아니냐, 예수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했다'라고 생각으로만 한 그것이 멈춰지지 않고 점점 부풀어 오르고 더해지고 왜곡되어져서 나중에는 예수를 죽이게까지 했던 생각이라는 점에서 "회개가 없는 말씀으로 가득찬 사람"이 얼마나 완곡하고 교만한지 우리는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내 모습이 되지 않도록 말이죠. 

예수는 그들의 완고함을 드러내고자 그들의 생각을 드러내셨죠.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그러시면서 말로만 신성모독이나 죄사함에 대해서 운운하는 것보다 더 특별한 권세를 가진 예수의 권한을 보여주고자 하십니다. 즉 중풍병자가 병고침을 받아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이유는 "인자가 땅에서 죄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너희로 알게 하고자 함"이라는 목적까지 알려주십니다. 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써 이 세상에서 죄, 질병, 마귀를 꾸짖고 내쫓아 인류를 자유케 하는 은혜의 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하시는 것이죠. 하여 예수는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가라고 하셨고 그 일은 일어났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예수가 이 땅에 오심으로 주의 은혜의 해는 시작되었습니다. 인류는 이것을 믿고 오늘 중풍병자와 그 지인들과 같이 예수께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을 받아누리는 것은 우리의 일입니다. 예수를 통해 우리의 지위와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음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명예롭게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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