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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누가복음_하나님의 아들

눅 2:1-7

by 우루사야 2024. 1. 10.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편지는 목적에 대해 "당신이 알고 있는 바를 더 정확하게 근원부터 알기 원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1장은 예수가 태어나기 전부터 어떤 일이 있었는지, 특히 세례요한이라는 아기가 왜 먼저 태어나야 했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뿔이 이 땅에 나타날텐데 그것을 미리 앞서서 선포하고 선언하며 준비하는 역할이 세례요한이 이 땅에 태어난 이유였습니다. 분명히 인류는 그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강력하고 카리스마있는 신의 모습으로 오지 않고, 낮고 누추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는 구원자를 인류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가 신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미리 이야기하고 계획된 것이었으며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섭리라는 증거를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세례요한을 먼저 보내셨던 겁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이제 아기 예수가 태어나는 이야기를 누가는 시작하고자 합니다. 때는 로마황제 가이사때의 일이었습니다. 

1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2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3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로마황제 가이사는 로마권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호적신고를 하게끔 했습니다. 세금을 체계적으로 거두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역사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낳은 일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이 일로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 민족도 이 명령을 따라 대대적으로 자신의 고향땅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마리아의 출산예정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요셉과 마리아는 고향땅으로 내려갑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식을 올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 약혼사이는 현대와 차이가 있습니다. 이 때의 약혼은 준결혼의 구속력을 갖기 때문에 약혼을 깨는 방법은 이혼밖에 없을 정도로 법적구속력이 강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없이 마리아는 요셉을 따라 요셉의 본적으로 이동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왕이신 예수를 낳기 위해 유다지파의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 것이지요. 그곳은 우리가 잘 아는 베들레헴이었습니다. 4-7절입니다. 


4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5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6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7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요셉과 마리아는 200km 거리를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유대땅은 산지로 이뤄졌기 때문에 성경에서 "오르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힘든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문제는 이번 호구조사는 짧은 시간안에 이뤄지는 이스라엘 전체의 대대적인 민족이동이기 때문에 모든지 자리가 없다는 겁니다. 물가도 비싸지고 먹을 것도 부족했을 겁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가장 중요했던 숙소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것이죠. 마리아는 한 여관에서 아기를 낳았는데, 그 여관에 방이 없으니 마굿간에서 아기 예수를 출산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아기를 누윌 곳이 없어서 말이나 소가 여물을 먹을 때 쓰는 밥그릇되는 말구유에 아기 예수를 눕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한가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세례요한의 출생보다 너무 열악한 환경이라는 것이죠. 왜 하나님은 예수를 이런 환경 속에서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약혼 때에 아기예수가 태어난 것도 어려운 환경이었는데, 출생하는 이 순간까지도 하나님은 쉽게 넘어가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위대한 신이자 왕의 모습으로 세상에 보이지 않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뿔은 사슴의 큰 뿔처럼, 코뿔소의 큰 뿔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영혼과 마음, 내면에서 이뤄지는 구원이기에 물리적으로 커보이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오해의 소지만 낳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예수가 가장 낮은 위치에서 태어나게끔 하심으로써, 어떤 가난하고 누추하고 낮은 자리에 있는 자라도 공감할 수 있는 자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 어떤 연약한 자라 할찌라도 예수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없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예수가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정리해보자면, 예수는 몰락한 왕가 다윗가문에서 태어나셨고, 아버지의 직업은 가난한 목수였으며, 고향은 가장 종교적혜택으로나 경제적혜택이 없다는 북쪽 갈릴리 나사렛이었습니다. 출생의 순간까지도 예수는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는 바닥부터 끌어안는 하나님으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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