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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누가복음_하나님의 아들

눅 1:57-66

by 우루사야 2024. 1. 8.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을 살펴봤습니다. 사명을 품은 성도간의 만남에는 성령이 함께 충만하게 계셨고, 찬양과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일하심을 함께 고백하고 나누며 3달이라는 시간이 지나 엘리사벳이 세례요한을 낳게 되었습니다. 56-58절입니다. 

56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57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58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아마도 마리아는 엘리사벳이 출산할 때까지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즐거워했겠지요.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뱃속에 생긴 아기 예수를 물리적으로 느끼기 시작했을 겁니다. 임신 3-4개월 정도면 아기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여성의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하기 때문이죠. 엘리사벳의 출산을 보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고민과 감사를 함께 가졌을 겁니다. 더욱이 엘리사벳은 노령의 나이에 불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생긴 아이라고 가브리엘이 한 말을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통해 들었을 겁니다. 그것은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품게 된 마리아에게 큰 위로와 격려, 도전이 되었을 겁니다. 자신보다 먼저 앞서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아기를 낳는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있어서 신앙의 선배였던 것이죠. 이제 다시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 이야기로 전환됩니다. 59-63절입니다. 

59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60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61그들이 이르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62그의 아버지께 몸짓하여 무엇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는가 물으니63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

유대교 율법에는 갓난남자아기는 성기 끝부분을 자름으로써 할례의식을 가지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로 하나님이 직접 명하신 예식이었습니다. 생명의 낳음은 남자의 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임을 밝히는 의식이죠. 그러면서 아기의 이름을 짓고자 합니다. 그 때 옆에서 돕던 친족들이 전통을 따라서 아버지를 따라 사가랴로 짓고자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벳과 사가랴 모두 "요한"으로 지을 것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특히 62절에 보니 사람들이 사가랴를 향해 몸짓으로 의사를 묻습니다. 사가랴는 말도 못할 뿐 아니라 듣지도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을 믿지 못했던 사가랴에게 내려진 침묵의 시간은 말도 못할 뿐 아니라 듣지도 못함으로써 낳을 아들 요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을 겁니다. 어쨌든 이런 결정은 주변인들에게 너무나도 낯선 결정이었습니다. 전통과 관행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네,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 인간이 쌓아온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첨탑처럼 쌓아올린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는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아무조건 없이 인간과 인류를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64-65절입니다. 

64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65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골에 두루 퍼지매66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이르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하니 이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심이러라

이름을 짓는 과정을 마치자마자 사가랴가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사가랴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높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살았던 유대지방 곳곳에 퍼지게 됩니다. 뭐라고 퍼졌습니까?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났다, 돌아왔다, 다시 역사하기 시작하셨다. 우리 민족을 하나님이 돌보신다. 네, 그들은 이런 역사를 보며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면서 65절에 보니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경외함"이라는 단어로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면서도 존중하고 높이게 되는 예배의 감정입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출산을 보면서 가졌을 많은 생각들, 사가랴가 자신의 입이 풀리면서 찬송하며 느꼈을 감정들, 요한의 출생과 이름을 짓는 과정들을 목격하며 신앙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했을 주변인들. 모두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으로 귀결됩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높으시면서도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내 심령으로 내려오신 분이십니다. 그 분을 두려워하며 사랑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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