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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누가복음_하나님의 아들

눅1:26-33

by 우루사야 2024. 1. 3.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난 본문에서는 세례요한의 출생에 대해 하나님의 능력천사 가브리엘의 사역을 살펴보았다면, 오늘은 예수님의 출생에 대해 가브리엘이 다시 한번 나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함께 보시죠. 26-29절입니다. 

26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27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28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29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엘리사벳에게 세례요한이 잉태한지 6개월째의 일이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다시 한번 나타났음을 말하기 위해 나사렛이라는 도시로 갑니다. 한 여인에게 나타났는데 누가는 그녀를 향해 처녀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은혜를 받은 자여"라는 인사말을 더합니다. 무언가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는 것인데, 마리아는 이 인사말이 의문스럽습니다. 이 인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30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31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32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33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가브리엘이 엘리사벳에게 말했던 것과 같이 마리아도 생명을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인간의 조건과 환경에서는 아이를 잉태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브리엘, 하나님의 힘이 나타나니 상황과 조건을 뛰어넘어 그들은 그렇게 되었습니다. 세례요한때처럼 마리아에게도 아기의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커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도 말해줍니다. 세례요한이나 예수나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할"은 우리가 잘 알듯이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는 좀 더 특별한 역할이 주어집니다. 천사가 그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큰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 다윗의 왕위, 야곱의 집의 왕. 네. 다스리는 자로써의 표현을 여러가지 표현으로 반복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좀 더 특별한 의미들이 있으니 인간의 왕과 비교되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지극히 높음이라는 형용사와 나라가 무궁하다고 할 때의 무궁입니다. 이 두가지는 모두 신적표현입니다. 

누가는 세례요한과 예수의 탄생을 거의 비슷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표현들도 확인이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요? 그가 이 편지를 쓰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데오빌로가 아는 것을 근원부터 더 정확하게 알기를 원하고 그것들은 예언된 것이 이루어진 것임을 말하고자 함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네, 하나님은 배반하고 떠난 탕자와 같은 우리를 구하기시 위해서 섬세하고 세세하게 일하시며 약속하셨고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케 하셨고, 그리고 그 일이 지금 본문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탄생에 대해서 구약 선지자들은 내내 예언을 해왔지요. 그런 점에서 말라기 선지자때로부터 세례요한때까지 400년의 시간은 어둠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광명의 빛이 뜨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과정, 장소, 시간, 절차, 대상 모든 것에 있어서 섬세하게 일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그리고 그 약속 두가지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왕으로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시어 왕좌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것 하나와 지금 이 땅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를 내일도 인도하실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두가지는 이뤄집니다. 그것을 믿으며 살아가시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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