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부터는 에스라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과 오신 후 신약으로 나뉘고, 구약은 또 장르에 따라 선지자들의 선지서나 시편, 잠언들과 같은 찬양이나 격언을 가진 시가서와 같은 것들로 나뉩니다. 그중 가장 큰 것이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죠. 여러분이 잘 아시는 창세기가 그 첫번째 책이라면 에스라서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의 이스라엘 역사 중 가장 마지막 역사책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마지막은 사실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깝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 남쪽 유다는 바벨론이라는 나라에게 멸망당하고 게다가 신앙을 끝까지 지켜낸 남유다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되기 때문이죠. 너무나도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미리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11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렘 25)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이 시작할 수 있도록 계획하기도 하셨습니다. "10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29)
그 예언의 실현이 바로 우리가 오늘부터 묵상하게 될 에스라서입니다. 암울한 역사의 마지막이 포로에서 다시 본국으로 귀환하는 역사인지라 참으로 감사하지요. 이 때에 하나님이 어떤 마음으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는지 함께 살펴보시면서, 온갖 절망 속에서 어떻게 우리 인생 속에서도 하나님이 소망을 주시는지 함께 묵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먼저 1-4절입니다.
1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2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3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4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서두에 유다가 강대국 바벨론에게 멸망해서 포로로 끌려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벨론도 멸망당하고야 맙니다. 새로운 제국 바사, 여러분이 잘 아는 페르시아가 바로 바사입니다.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바사왕국을 세운 고레스왕이 나라를 세우자 마자인 원년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절에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고자 하나님이 무언가 또 새로운 일을 행하십니다. 그간 유다는 하나님의 계속되는 경고, 우상숭배로부터 떠나라는 그 경고를 듣지 않아 결국은 멸망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땅인 가나안 땅에서 쫓겨났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다시금 그들과 시작하고자 이끌고 오시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이 강대국 애굽으로부터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올 때에 이집트 왕 바로의 강퍅한 마음이 도구가 되었다면, 이번에는 고레스 왕의 마음이 긍정적으로 사용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예언하기를 고레스 왕을 행해 "내 목자"가 될 것이라고까지 하셨죠.
28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사44)
역사적 유물로 남겨져 있는 고레스 칙령 실린더 유물을 보면 고레스 왕이 어떻게 바사국 내에 있는 이방인들을 자신의 고국으로 돌려보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만이 아니라 다른 이방민족들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도록 하게끔 했지요. 그런데 이 유물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참 신이시니 그가 나에게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에게만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권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구와 온 우주를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이죠. 여러분, 그 하나님께서는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교회에만이 아니라 정치구조, 정계, 나라간의 경계에도 분명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종말 때의 결말"을 만들어가기 위해 하나하나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세는 하나의 강대국, 한개의 정당, 한명의 리더로 국한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전지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지금 이 땅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5-11절을 보겠습니다.
5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6그 사면 사람들이 은 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7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성전 그릇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신당에 두었던 것이라8바사 왕 고레스가 창고지기 미드르닷에게 명령하여 그 그릇들을 꺼내어 세어서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주니9그 수는 금 접시가 서른 개요 은 접시가 천 개요 칼이 스물아홉 개요10금 대접이 서른 개요 그보다 못한 은 대접이 사백열 개요 그밖의 그릇이 천 개이니11금, 은 그릇이 모두 오천사백 개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갈 때에 세스바살이 그 그릇들을 다 가지고 갔더라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귀환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5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성전건축"입니다. 성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성전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이 바벨론 침략때에 무너지고 그 안에 있었던 기물들을 다 빼앗겼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들어가지도 보지도 만지지도 못할 것들을 이방인들이 마음대로 성전에 들어가 다 빼앗아갔습니다. 예식, 전통, 절차가 무너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성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신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가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통해서 성전을 다시 건축하라고 하신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게다가 그 왕은 성전기물들까지 다시 돌려주기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다시 함께 하고자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8절에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유다 총독으로 임명된 세스바살입니다. 이는 19대 유다왕 여호야긴의 손자로써 다시 다윗왕가의 통치계보가 이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한 나라가 세워지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시민, 국토, 주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귀환하고,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전이 세워짐으로써 하나님의 율법을 근간으로하는 통치가 다윗혈통 세스바살로 세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를 다시 세우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이 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전세계를 통치하고자 청지기나라를 다시금 세우고자 하시는 것이죠. 여기서 세스바살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스룹바벨입니다. "바벨론에서 출생한 자"라고 해석할 수 있는 이름입니다. 네, 스룹바벨은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할 때의 암흑기, 그 우상숭배의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광야에서 태어난 출애굽 2세대처럼, 바벨론포로 2세대였습니다. 그로부터 다시금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나님은 그가 태어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부터 에스라서 6장까지는 스룹바벨을 통해 세워지는 이스라엘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항상 다시금 시작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심을 우리가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하나님을 떠나며 배반할 그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계획하시는 분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하루도 그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고 다시금 하나님과 시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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