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에베소서는 바울이 에베소교회에게 쓰는 것이며 출신과 직분에 상관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명확하게 압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경우 발신자와 수신자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편지내용의 정황을 우리가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오히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메시지에 더 집중할 수 있는듯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저자는 다시 한번 권면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중간부터 보죠. 6:1-3절입니다.
6:1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3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저자는 성도들에게 수준이라는 것이 있음을 말하면서 초보에서 전전긍긍하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오라"고 말합니다. 자라나라는 말이지요. 초보의 수준을 말하면서 회개, 신앙, 세례, 안수, 부활, 심판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것이 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죠. 초급 중급 고급 단계는 이 단계를 꼭 거쳐가야 한다는 의미를 말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초보"라는 단어를 쓴 것이지요. 초보를 꼭 거쳐서 중급과 고급으로 나아와 "완전한 데로 나오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 교리들을 근간으로 하되, 초보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그리스도라는 완전한 자에게로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나의 완전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불완전하고 여전히 연약하지만 그리스도께로 나아감으로써 그리스도의 완전한 은혜에 붙들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아버지가 자녀를 붙듦으로써 안전해지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궁금해집니다. 이 초보에서 더 나아가는 중-고급반은 무얼 배우는 것일까요? 바로 그 전 본문인 5:11-14절을 보면 됩니다.
5:11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여러분.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시기 전에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이런 의도와 목적으로 올 것이야"라는 힌트와 예시들을 성막과 율법으로 주셨습니다. 이것들을 주시기전인 아브라함에게는 멜기세덱을 보내주셨지요. 이삭에게는 세천사를 통해 예언을 주셨죠. 야곱에게는 환상과 새로운 이름을 주셨죠. 이렇게 하나님은 계속해서 예수에 대한 힌트들을 구약성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서 예수가 왔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에 대한 힌트들을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11절에 보니 저자는 편지를 받는 성도들이 그간 말씀을 등한시 하고 듣는 것에 둔했다고 질책합니다. 그것도 오랫동안 배우는 시간을 가졌음에도 "누군가에게 예수에 대해 설명해야 할 선생"이 되지 못함을 질책합니다. 더 나아가 말씀의 초보수준이기에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할 지경이라고 혼을 냅니다. 그러면서 13-14절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13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여러분. 여기서 두 표현을 주목해볼까요? 말씀을 경험하는 자. 선악을 분별하는 자. 저자는 이 두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라고 말해줍니다. 네. 말씀도 없으면서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르다라고 말하는 자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교만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들이 교회에 있다면 얼마나 혼란스럽겠습니까? 말씀을 경험하지 않았으면서 자신의 지각과 생각으로 교회는 이렇게 해야 한자 저렇게 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본문을 쓰는 사도는 어린아이수준이라고 강하게 질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더 무서운 초보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합니다. 6:4-8입니다.
4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7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4절 하반절에 "성령에 참여한 바" 즉 성령과 교제를 했습니다. 그래서 빛을 받고 은사를 맛보고 말씀과 능력을 경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놓치고 흘려보내며 굳게 잡지 못해 결국에는 세상으로 돌아가 타락하는 자들은 무서운 상태에 다다르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에 참여해놓고 다른 이의 손을 잡는 다는 것은 성령을 거절하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죠. 그것을 사도는 "예수를 다시 죽이며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죠. 하여 마지막에는 버림을 당하고 불살라질 것, 즉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지 않은 자는 초보수준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아본 자가 말씀을 경험하는 길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이 경고에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은혜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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