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며 말씀하신 "복음의 확장"이 점점 이뤄집니다. 그 사실을 누가는 12사도보다는 "7집사"를 통해서 이뤄지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호재를 통해서가 아니라 "고난과 핍박"으로 이뤄졌다고 그는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인간의 호재를 통해서가 아니라 악재 속에서 퍼져나가게끔 하십니다. 하여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구원과 복음"이 퍼져나간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나의 힘과 나의 주장으로 신앙의 부흥을 이루고자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성령을 따라가며 순종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런 점에서 누가는 지난 시간 순종의 빌립과 정반대의 사람을 등장시키는데 우리가 잘 아는 사울입니다. 그에 대한 설명 1-4절을 볼까요?
1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2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3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4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5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누가는 가장 먼저 12사도, 그 다음으로 7집사를 등장시켰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유대교 중심에 있는 사울을 등장시킵니다. 그를 통해서 어떻게 복음이 전해지는지 말하고자 함이지요. 1절을 보니 사울은 예수제자들에게 살기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네, 그는 기독교인들을 증오하고 경멸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권한을 위임받아서 예수제자들을 잡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유대교 공의회원들의 마음에는 시기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사울의 마음에도 시기가 있었지만, 그는 더 나아가 증오와 분노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시고, 예수가 사람을 살리시고, 성령이 사람에게 생명을 부어주십니다. 사울은 그런 하나님과 정반대의 길을, 그것도 하나님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달려들고 있는 것이죠. 나의 열심이 오히려 하나님을 거스르게 했던 것이 바로 사울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런 사울을 예수님께서는 부르십니다. 건축자의 버린돌로도 건물의 주춧돌로 사용하시는 주님이시기에, 사울의 인생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역사하실 수 있으신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울을 불러 그를 회심시키기로 작정하십니다. 특히 예수님이 사용하고자 하셨던 방법은 "예수와 제자들의 연합원리"였습니다. 사울이 제자들을 박해하니, 예수는 그것을 두고 "나를 핍박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겁니다. 네, 예수님은 살아생전에 가르치시기를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옥에 억울하게 갇히거나, 굶주리거나, 병들거나, 억압받는 자에게 대한 것이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군가에게 한 행동을 예수에게 한 행동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네. 주님이 다스리시는 방식은 "아버지가 막내를 손윗형제"에게 맡기듯, 좀 더 강하고 가진 것이 많으며 안락한 자에게 가난한 자를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연약한 막내를 아버지가 사랑하듯,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만드셨고 또 막내처럼 여기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 주님은 "예수제자"들을 돌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제자에게 한 것이 예수에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나누며 헌신하며 스스로 낮아지고 연약해지는 이들이었습니다. 스스로 굶주리고 스스로 억압받는 자들이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는 그들을 당신과 일체화 시키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높아지고자 하면서 예수와 하나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이 원리를 예수는 사울에게 말하며, 사울이 낮아지고 굶주려지게 하십니다. 6-9절입니다.
6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7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8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9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예수의 명령으로 살기로 기세등등하며 누구든 짓밟으며 위로 올라서려했던 사울이 낮아집니다. 스스로 걸을 수 없을만큼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타인의 손에 끌려 다닐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됩니다.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며 굶주리게 됩니다. 그렇게 사울은 낮아집니다. 예수는 사울을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그간 복음의 확장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보았습니다. 12사도를 통해서 폭발적으로 퍼져갔던 복음이 예루살렘에 가득찹니다. 그러다 스데반의 순교를 시작으로 핍박받으니 제자들이 흩어집니다. 그러나 그들은 피난길에도 복음을 전하니 빌립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또 에디오피아 내시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고향으로 가게 됩니다. 이제는 마침내 유대교 본진 중앙에 있는 사울이 예수의 제자가 됩니다. 네, 복음의 확장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것이요, 우리는 따르는 인생입니다. 성령을 거스르지 아니하고 따르며 순종하며 나아갈 때 우리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혼을 구하는 인생으로 사용해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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