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13사울이 이르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14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15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어제 본문에 이어 11장을 함께 살펴볼텐데요, 지난 시간에 이스라엘과 사울은 "섬김의 나라"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전적주권을 나타내는 제비뽑기로 사울이 왕으로 뽑혔음에도, 이스라엘에는 부정적 평가가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섬김의 사울"을 통해 암몬에게 대대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보기에 보잘것 없는 사람과 가문을 통해, 놀랍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특히 "여호와의 영으로 함께 싸우고자 하는 마음을 일시에 가지게 한 사울"로써 이제는 당당히 온 나라의 왕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우리가 왕에 대한 이야기를 드라마나 역사서적에서 접하다보면 "적통"이라는 것을 따지게 되는 것을 봅니다. 왕이 되기 위한 명분을 이야기하겠죠. 그런 점에서 사울은 하나님의 나라요, 섬김의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자로써 너무나도 적합한 인물의 요건을 지금 갖추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본문을 살펴보죠. 12절입니다.
12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길르앗 야베스를 향해서 치욕적인 요구를 해왔던 암몬이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국방력이 상대적으로 너무나 약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지만,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사로 있으면서 뇌물로 재판해왔던 사실을 통해 이스라엘이 행정적으로도 부패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나라와 경계를 맞닿고 있는 도시들을 가장 잘 지켜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야베스 성읍은 암몬에게 농락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을 인간된 마음으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부정적 세력"이 대놓고 발언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나라 전반에도 사울에 대한 이런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오히려 조금만 틈을 보이면 "반역세력"이 되어, 왕을 바꾸자고까지 할 기세였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사울이었기에 밭에서 소를 끌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 그가 여호와의 영으로 암몬과 싸울 때에, 온 나라의 군사들을 모았고 특히 유다지파에서 군사를 3만명이나 받아 이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승리하고 돌아오니 누가 사울을 대적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니 자연스럽게 12절과 같이 "사울을 반대한 자가 누구입니까? 처형합시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지요. 이에 사울이 13절과 같이 말합니다.
13사울이 이르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지금 사울이 보이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입니다. 자신의 반역세력을 없앨 수 있는 가장 명분이 좋은 날이 지금 자신을 향해 추앙세력이 가장 극에 달한 오늘입니다. 승리하고 돌아온 날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자신을 높이기 보다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살리기 위해서 일하신 날인데 어찌 우리가 사람을 처형할 수 있느냐"라며 반대합니다. 지금 사울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굉장히 친근하고 가까이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전쟁을 하기 전에 야베스 성읍 사람들에게 한 말을 잠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정오즈음에 구원받으리라"(11:9) 사울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니 전쟁을 어떻게 이기고 또 언제즈음에 마무리 지을 수 있는지 확답하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본래 원했던 "다른 나라와 같은 왕"의 모습을 뛰어넘어, 우리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답을 주는 왕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무엇때문에 가능했습니까? 사울이 왕이 되면서 함께 하게 된 "여호와의 영"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사울을 보면서 "선지자 중에 사울도 있었느냐"라는 속담이 생길 정도였습니다.(10:11)
여러분,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결코 힘으로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사람 자체가 힘과 강압으로 다스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힘이 아니라 마음으로 다스리려는 지도자들 중에는 마음을 헛된 것으로 다스리려는 자들도 있습니다. 재정지원, 문화, 스포츠, 다른 큰 사건 등으로 국민의 마음을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다스리려 하는 자들에 대한 역사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요즘 매체나 유튜브를 통해서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사야하고, 무엇을 공부해야 뒤쳐지지 않습니다!"라며 다스리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낙폭이 큰 시장, 또는 빠른 문화흐름을 통해서 그들의 말이 얼마나 덧없고, 한계가 많은지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섬김"으로 다스려야 하고, "섬김의 힘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며, 그 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라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우리도 같은 사람이며, 같은 죄인이며, 같은 지혜없는 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으로 다른 이를 향해서 "이쪽으로 가야 한다, 이쪽에 구원의 길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상에서 교회에서 지역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께 엎드리시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섬기십시오. 그러면 어느샌가 높아져 다스리는 자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다음 14절입니다.
14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사무엘은 이전에 사울에게 개인적으로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으셨다"(10:1)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에 7일을 기다리라고 한 후에 제비를 뽑고, 암몬과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사울을 이스라엘의 현실적인 왕으로, 명분만 있는 왕이 되지 않도록 하셨지요. 길갈에서 7일 후에 만나자고 했던 때와 이제 7일이 지나서의 상황은 정말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셨고, "약속을 이뤄내시는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과 섬김으로 일하시는 전능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무엘은 그런 사울과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를 바라보며 "나라를 새롭게 하자"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대선이나 총선을 치루면서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을 바라보며 "나라를 바꿔 줄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마음 속에 혹시 "우상숭배의 마음"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정당, 어떤 정치인을 통해서도 나라를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속에 "약속하시는 하나님과 섬기는 시민으로서의 나"가 있었는지가 더 중요하겠습니다. 마지막 15절입니다.
15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나라가 새로와집니다. 가장 먼저 길갈에서 이뤄집니다. 이전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시절과 불순종하며 광야를 떠돌던 때를 떠나보낸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 길갈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사무엘과 사울은 사사시대 때 온갖 이민족에게 억압받으며 고통받았고 국내적으로는 각자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며 엉망진창이 된 나라를 떠나보내자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길갈에서 할례를 받으며 가나안 땅의 주인으로 들어왔던 선조들처럼, 사울과 사무엘은 길갈에서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며 가나안 땅의 진짜 주인으로서 다시 "하나님의 법"으로 다스리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세상의 방법과 너무나도 다릅니다. 왜냐하면 우선 우리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기에, 우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며 일의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도움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과 절차를 따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일상을 두고 기도하고 묵상하며, 말씀에서 배운 하나님을 따라갈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의 일상을 여러분이 이끌어가는 것처럼 여기시지만, 하나님이 더 큰 세계에서 인도하고 계시고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따라가십시오. 그리할 때 마지막 구절처럼 구성원들이 여러분을 높이며 "크게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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