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18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19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20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21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7:1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2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지난 시간에 언약궤를 경건하게 다루지 않아던 블레셋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원리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온 창조물의 기준이 되어주십니다. 그 기준을 그 누구도 해할 수 없고 변질시킬 수 없고 함부로 대해서도 안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회개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 불경건하게 자기만족을 위하며 대할 때에는 죽음에 다다르게 됩니다. 다윗시대에 언약궤에 손을 대다가 죽은 이가 있었듯이, 오늘 본문에서 벧세메스 사람들이 언약궤를 함부로 대하다가 블레셋 사람들과 같이 죽게 됩니다. 17-18절부터 보겠습니다 .
17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18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블레셋에는 큰 도시 5개가 있었는데, 그 도시들을 중심으로 그 아래 작은 도시들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5개 도시를 대표하는 속건제물을 수레에 함께 넣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블레셋의 문제는 일단락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약궤가 온 벧세메스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이자 하나님나라 이스라엘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는 자에게는 동일한 심판이 내려집니다. 19절입니다.
19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여러분, 우리가 계속 살펴봤듯이 우리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은 딱 한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성령모독죄라고 하셨고, 지난 본문에서는 은혜를 거절했던 홉니와 비느하스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거절하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은 용서받을 길이 없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벧세메스 사람들은 언약궤를 함부로 대했다가 블레셋에 어떤 난리가 일어났는지 충분히 알았음에도, 언약궤를 구경꺼리나 되는 것 마냥 대했습니다. 그 결과 그 사람들이 모두 죽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도움을 구하는 낮은 자가 아니라 높이 서서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대하는 자의 결과입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죽음이 신약에서도 등장하지요. 바로 헌금을 가지고 자신을 높이고자 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입니다. 베드로는 그 부부에게 "땅이 본래 너희것이기도 하고, 판 후에도 너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인데, 왜 하나님을 속였느냐"라고 말합니다. 그것으로 지탄받게 되지요. 그 당시 초대교회는 유대교에서 개종하여 한 순간에 부랑자로 전락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따로 교회 건물이 없기에 그들은 가정집에서 모이곤 했습니다. 하여 기독교인들 중 많은 이들이 자신의 전재산을 교회에 드림으로써 자신의 집이 예배당으로, 자신의 재산이 교회의 구제용으로 쓰이게 했지요.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이렇게 교회의 중심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욕심으로 가지고도 있었고, 뒤로는 재산을 따로 챙겼던 것이지요. 그 결과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들은 교회라는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자신의 야욕을 위해서 쓰고자 하다가 이런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어처구니 없는 죽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거절하고 자신이 스스로 높아지고 자 하는 자들, 특히 하나님을 이용해서 높아지고자 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내려오게끔 하신 것입니다. 블레셋이 언약궤를 다곤 신 옆에 둔 것, 언약궤를 이리저리 떠돌게 한 블레셋 도시들, 언약궤를 전쟁에 사용하고자 했던 엘리가문과 이스라엘, 언약궤를 구경거리와 자기만족으로 두고자 했던 벧세메스 주민들, 교회를 자신의 높은위치자리로 삼고자 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모두 하나님을 이용해 스스로 높아지고자 했던 자들의 공통점입니다. 우리는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엎드리고 섬겨야 하갰습니다. 더 낮아져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높아집니다. 섬기는 자를 높이십니다. 마지막 20-21절입니다.
20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21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벧세메스 사람들이 언약궤를 감당하지 못해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함께 계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벧세메스는 블레셋과 같은 반응으로 언약궤를 대합니다. 결국 본래 언약궤가 있었던 실로에 가장 가깝고 가장 큰 성읍있었던 기럇여아림 성읍으로 보냅니다. 그곳 사람들이 감당해주기를 바랬던 것이지요. 그렇게 궤를 옮겼지만, 그 궤가 실로로 들어가지 못하고 아비나답이라는 사람의 집에 머물게 됩니다. 7장 1-2절입니다.
7:1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2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잠깐 있는 것이 아니라 20년 동안 머물게 됩니다. 수십년 후에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시 들이고자 할 때, 그 때 이 웃사가 언약궤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만지다 죽게 되는 사건이 있게 되지요. 그리고서 오벧에돔이라는 사람의 집에 언약궤가 있게 되는데, 성경은 "온 집이 복을 받았다"라고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임재는 심판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복이 됩니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신의 만족을 채우고자 하는 자들은 낮아지게 되지만, 하나님을 높여드림으로 있는 자들을 하나님은 높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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