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19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20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21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22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오늘도 다시 은혜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삼손은 결국 유혹에 넘어갔고 블레셋인들에게 잡혀 희롱을 당합니다. 이방 땅에서 노예로 전락하고야 맙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삼손 스스로 만들어내고야 말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에게 지옥행 저주와 처벌을 내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물론 마지막 날에 모든 권세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심판대에서 모든 것을 판결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까지 우리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보호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자꾸 우리가 미련한 오만함으로 하나님을 밀어냅니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 유기상태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비유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탕자이야기"죠. 그렇습니다. 삼손이 이렇게 계속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는 그 상황에서도 탕자이야기에서 탕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처럼 하나님은 삼손을 기다리고 계셨을 겁니다. 그 하나님의 심정으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18-19절입니다.
18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19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삼손이 첫번째부터 세번째까지 거짓말을 했을 때와는 다르게 네번째에는 진심으로 말했고, 들릴라는 이것이 진심인 것을 깨닫고 다시금 블레셋 사람들을 동원합니다. 삼손에게는 무릎에 누워편하게 자라고 연인의 달콤한 속삭임으로 말하지만, 그 속내는 그를 결박하려는 악독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돈"이었습니다. 결국 악독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막으려는 사단의 계획이 성공하는듯 합니다. 들릴라가 삼손의 댕기머리 7개를 밀어버렸더니, 삼손에게 힘이 없어졌습니다. 삼손이 자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삼손의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타인이 한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힘이 없어졌습니다. 그 머리가 밀릴 것이라는 징조는 수도없이 나타났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자신이 조율할 수 있다는 자만으로 있었습니다. 결국 그가 힘을 잃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하나님과 죄사이, 유혹과 쾌락 사이에서 자기 스스로가 기준이 되어 조율할 수 있다는 자만"으로 그는 힘을 잃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여러가지 교회에서의 문제로 아픔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하나님을 만난 자는 어떻게든 그 신앙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보며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은 결국 그 신앙을 놓아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사람때문에 시험이 들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다니던 교회를 떠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며,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몸이 되는 교회 안으로 다시 들어와야 한다는 하나님의 영적원리이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난 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또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있는 교제의 공동체로 돌아오게 됩니다. 물론 교회를 떠나게 만든 자들도 책임이 있지요. 허나 나 스스로 하나님과 죄사이를, 세상과 교회 사이를 조율하며 신앙생활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언약하신 교회 안에서 겸손과 인내를 가지고 신앙안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이어갑니다. 이제 힘을 잃은 삼손이었습니다. 20-21절입니다.
20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21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얼마나 자만하고 오만한 말입니까? 계속해서 유혹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삼손이었습니다. 그러나 전과 같이 내가 이겨내리라! 라고 말합니다. 누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겨내라고 했습니까? 그가 했어야 했던 전쟁은 이스라엘을 이끌고 블레셋과 전쟁하는 것이지, 여인의 집에서 이런 노닥거림 속에서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머리가 밀리고 힘을 잃은 삼손이었지만, 그의 오만함은 자신이 힘을 잃은 줄도 깨닫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오만과 방자, 여러분 스스로를 믿고자 하는 교만은 여러분의 힘이 얼마나 약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르게 합니다. 결국 세상의 쾌락과 허망함 속에서 짓눌려 있는 나 자신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어떤 기준과 원리, 목적, 방향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고 선택하는지 깨어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원리,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방향을 알기 위해 기도와 말씀으로 깨어있어야 하겠습니다. 삼손의 방향은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의 구원자, 우상숭배 블레셋과의 전쟁"이었지만, 그의 오만함은 그를 결국 노예로 전락시키고야 말았습니다. 마지막 22절입니다.
22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민수기 율법에 나실인이 규정을 범한 경우 머리를 다시 밀고, 하나님과의 서약을 다시 지키게끔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삼손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유기상태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탕자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가 마음을 다시 잡고 돌아오기만 한다면 삼손에게 다시금 힘을 주시고 높여주시고자 기다리고 계십니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의 표징이 되는 나실인의 머리, 삼손의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 시작합니다. 힘을 주기 시작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이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여러분을 항상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떠나 있는 그 순간에도, 스스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 아버지는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어떻게 기다리는지 읽어드리겠습니다.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15장)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아들을 단숨에 알아봅니다. 그리고 그를 측은하게 여기고 볼살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끌어안습니다. 기다렸다고, 내가 너를 지금까지 기다렸다고,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고 부둥켜 끌어안으며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말할 수 없는 감격으로 그를 맞이합니다. 그렇습니다. 삼손을 향하는 아버지의 마음, 지금 여러분과 저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삼손이 무얼 해서 머리가 자랐습니까? 탕자가 무얼 잘해서 아버지가 받아주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버지는 잘못하고 있는 지금도 우리를 향해 나아오고 계십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내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조율할 수 있다는 교만을 버리고, 사랑의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와 함께 말하고, 아버지와 함께 생각하고, 아버지와 함께 판단하시며 오늘 하루도 승리하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강해설교 > 사사기_다시 주시는 은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삿 17:1-13 (0) | 2022.11.09 |
---|---|
사사기 16:23-31 (0) | 2022.11.08 |
사사기 16:10-17 (0) | 2022.11.08 |
삿 16:1-9 (0) | 2022.11.03 |
삿 15:14-20 (1) | 2022.11.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