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9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10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11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오늘도 다시 은혜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입다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써 사사로 세움을 받게 됩니다. 먼저는 입다의 고향 길르앗 장로들에게 세움을 받고, 장로들과 함께 이스라엘 대표단들로부터 이스라엘의 대표자로 세움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들은 질서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여기에는 인간적인 생각과 계산이 가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 먼저 8절입니다.
8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길르앗 장로들의 언행은 마치 이스라엘이 그간 하나님을 대하던 태도와 너무나도 비슷합니다. 이들이 입다를 내쫓을 때와 너무나도 다른 태도입니다. 왜 입니까? 어려움이 생기니까, 문제가 생기니까, 내 힘으로는 풀 수 없는 벽이 생겨서 찾아왔습니다. 염치가 너무 없지요. 우리가 11장에서 사사기 저자가 사사들의 기록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의 마음을 말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기회주의적인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13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14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10장)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것이 길르앗 장로들의 모습, 이스라엘의 모습, 우리의 모습이라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평안할 때에는 내가 원하는 세상, 바라는 삶, 추구하고 싶은 방향으로 갑니다. 하나님의 뜻은 개의치 않습니다. 그러다가도 문제가 생기면 다시금 하나님께 와서 도움을 요청하고서는 문제가 해결되면 또 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알려주시고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과 신뢰관계로 나아가야 할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본문에서 길르앗 장로들은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입다를 "길르앗의 머리"가 되게끔 해주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사와의 차별성을 보게 됩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대표자는 하나님이 구원자로 보내셔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엑스칼리버라는 전설적인 칼을 뽑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왕이 된다는 것처럼 말합니다. 암몬자손이라는 벽을 허물 수 있고, 문제를 해결 해주는 사람이라면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입다의 반응을 보겠습니다. 9절입니다.
9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여기서 이들의 대화가 얼마나 모순적인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을 표현할 때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넘겨주시면"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대표자가 될 때에는 "전쟁에서 승리만 한다면 대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게 해주는 자 따로 대표자가 되게 해주는 자 따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과연 하나님은 어떤 존재입니까? 이스라엘은 과연 어떤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겁니까? 엉망진창 뒤죽박죽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여기저기 붙이고 싶을 땐 붙이고, 떼고 싶을 때에는 떼어버립니다. 10절입니다.
10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하나님께서 이 일의 증인이 되어주신다는 말로 확증을 하고자 합니다. 과연 이 일을 하나님께서 무어라 생각하실런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이렇게 가르침을 주신 적이 있지요. "37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5) 입다와 길르앗 장로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거들먹 거리며, 대표자리를 두고 운운거립니다.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어주신다는 말을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겁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주시어서 감동으로 암몬자손과의 싸움에 나서는 자가 대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 자리를 두고 서로 이런 이야기를 운운합니까? 다윗이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골리앗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왕이 되어갔던 이야기와 너무나도 상반되는 인간들의 정략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나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흘러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얄팍한 생각으로 살아가고자 합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옳으면 옳고, 아니면 아닌 것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내 마음에 살아계신 성령님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11절입니다.
11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이런 입다와 길르앗 장로들간의 약속으로 입다가 이스라엘의 대표자와 군대장관이 됩니다. 신실한 믿음과 인간적인 방법 두가지가 혼용되어 있는 이율배반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왠지 나의 삶과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기사를 통해서 나 자신을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고백하면서도, 마음에는 결국 나 자신을 왕으로 삼는 나의 모순된 믿음을 하나님께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서 순전한 믿음이 되길 기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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