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다시 은혜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로 기드온의 이야기가 마무리가 됩니다. 여호와께서 이끌어주셨던 위대한 미디안과의 전쟁을 잘 치렀지만, 자신의 힘이 남아있던 에브라임이 왜 자신들을 더 높여주지 않느냐고 따졌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꼭 같은 행동을 기드온이 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봤습니다. 혹시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전쟁과 같은 이 인생을 잘 살아놓고, 마지막에 가서 하나님을 거절하고 나를 높이고자 할 수 있음을 스스로 우리에게 되묻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냄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의 인생을 살아내고, 마지막에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려드리길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를 왕으로 높여주실 그 하나님 아버지의 인자하심을 믿고 기대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본문을 살펴봅니다. 29-32절입니다.
29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주하였는데30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31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32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나이가 많아 죽으매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되었더라
기드온으로 말미암은 이스라엘의 득과 실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의 순종으로 미디안 대군을 물리친 이후 40년 동안 이스라엘에게 평온이 다가옵니다. 얼마나 평안했던지 기드온은 여러 아내를 통해서 수 많은 아들을 낳기까지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나이가 많을 정도로 장수"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실도 있었습니다. 33-35절입니다.
33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서서 바알들을 따라가 음행하였으며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34이스라엘 자손이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며35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 그의 집을 후대하지도 아니하였더라
33절에 보니 기드온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 우상숭배를 일삼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을 심겨주는 참된 사사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문제해결사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구원의 통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의 다리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34절에 보니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했다고 말합니다. 바알을 섬기며, 하나님을 잊어버리니, 이스라엘은 기드온의 집까지도 존중하지 않기까지 합니다. 신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다시 피폐해져버리는 이스라엘, 목자가 없으니 망가져버리는 양떼무리를 보는듯합니다. 영원하신 목자되신 여호와 하나님이 여전히 계시는데, 그들은 기드온을 목자로 섬겼으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사사기 저자는 31절에서 기드온의 많은 아들들 중에 한 아들의 이름을 굳이 언급하고자 합니다. 세겜에 사는 첩의 아들 "아비멜렉"이었습니다. 그다음 9장에서 아비멜렉이 왕이 되고자 일을 벌여 형제가족을 몰살하는 일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이 여호와의 전쟁을 순종으로 치뤘지만, 가장 중요했던 전쟁, 일상과 가정에서의 전쟁에 실패했음을 보게 됩니다.
일상에서 또 다른 우상 에봇을 만들어 이스라엘이 우상숭배하게끔 했고, 그 에봇으로 자신이 마치 신이 된듯 마냥 하나님의 뜻을 남발함으로써 권력을 손에 쥔 모습을 아들들에게 보임으로써 "절대권력자 왕"의 모습을 비췄습니다. 그러니 아비멜렉과 같은 아들이 나타나 왕이 되고자 가족을 모살시키게 되지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평소의 마음에서 우리의 언행, 판단, 기준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가족구성원과 주변이웃들에게 빛과 소금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반대로 악한 영향력으로 미치게 되기도 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빛을 비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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