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2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3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4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5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6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7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
8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니
9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10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만 명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오늘도 다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제까지 살펴보았던 사사 에훗이었습니다. 그가 죽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절입니다. "1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사사기에서 계속 나타나는 패턴입니다. 하나님이 은혜주시어 화평을 누리던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회복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을 잊어버리니 다시 악행을 일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여기서 하나님과의 하루에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예배 시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설교시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내어 내 안에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내 말과 생각이 악행을 일삼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렇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본문 살펴봅니다. 2-4절입니다.
2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3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4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5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악행을 저지르니 하나님께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십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스라엘을 다시 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댓가지불이 주어져야 하겠습니다. 그 댓가는 누군가의 희생이겠지요.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겠죠. 어쨌든 이번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다시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악행을 일삼는 이스라엘이 다른 이민족에게 고통받게끔 허용하십니다.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군대장관 시스라였습니다. 특히 이들의 군사력이 자세히 적혀있습니다 철로 만든 병거가 900대입니다. 이런 막강한 군사력으로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압제했는데, 본문은 특히 "심히 학대"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이들의 부르짖음은 하나님을 향한 회개일까요 아니면 압제로 인한 고통에 대한 부르짖음일까요? 계속 이런 실수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밖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울부짖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야 합니다. 이 부르짖음이 그래야 그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것이 관계를 위한 것이든, 아파서 울부짖는 것이든 하나님은 일단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으로 기다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4-5절과 같이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움을 받습니다. 그는 본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 은사를 받은 자였지요. 그래서 사사가 되기 전부터 자주 앉아있던 종려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중재해주고 재판해주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동네의 사사로운 재판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급재판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것들이 선지자 드보라에게 왔던 것이죠. 그래서 드보라 종려나무라고까지 불리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의미심장한 것은 드보라가 여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출애굽 때에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남성 중심으로 인구수를 셌습니다. 제사장도 모두 남성이었습니다. 땅분배도 남성들이 집안을 대표해서 뽑았습니다. 하나님이 남성을 먼저 지으셔서 그로 하여금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 안에서 함께 계수되고, 함께 복락을 누리는 하나님의 원리 속에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가부장적이고 진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만큼 오래된 것이 있을까요? 그 때 함께 지어진 원리가 하나님, 남성, 여성의 삼각관계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남성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얼만큼 희생하시는지 알아가며, 배우자 여성을 사랑해야 하며, 또 남성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배우자에게 순종의 자세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중대한 다리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러합니다. 더 내용이 길어지니 어쨌든 이런 성경적 세계관에서 여성이 민족의 대표자격으로 있다는 것이 얼마나 이스라엘의 질서가 무너졌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성인 드보라를 세워서 다스릴 수 있는 분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인간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대상이나 방법으로 하나님이 사사들을 세워 역사하시는 것을 살펴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 6-7절입니다.
6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7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
드보라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 바락이라는 자를 세우고자 합니다. 20년 동안 심히 학대했던 가나안족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이기게 하시겠다는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이스라엘에게 다시금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런데 지금 드보라가 이렇게 군대장관을 세우고 또 군대를 소집하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은 그간 잘 준비되지 못했었나 봅니다. 그런데 20년간 잘 갖춰진 군대로부터 압박받던 이스라엘이라면 당연히 겁이 나겠지요. 그래도 바락은 순종하고자 8절과 같이 말합니다.
8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니
하나님은 하나님이 세우신 세계를 뛰어넘는 분이심을 밝히고자 여자 선지자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승리를 주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믿음은 여기서 갈라지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환경과 조건이 내 생각, 내 주장, 내 판단과 너무 다를 수 있지요. 무턱대고 뛰어들 수는 없습니다. 뭐가 믿음의 판단인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소, 일상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져온 자들은 그 때 무엇이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인지 분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안에 계시니 뭐가 옳은 길인지 판단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로 성령이 충만한 자들의 대화와 그렇지 않은 자들의 대화는 질부터가 다릅니다. 그러니 결론도출이나 결과물도 다르겠지요. 오늘 본문에서 보니 사사 드보라와 발락의 대화가 매끄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바락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는 일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였던 자가 아니었나 봅니다. 결국 9-10절과 같이 됩니다.
9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10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만 명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하나님께서는 바락에게 승리를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단지 그 메시지가 주어졌을 때 심령 안에 하나님과 교제했던 자가 알아차리고 분별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으로 가득 차 있지 않고 내 욕심, 내 주장, 내 판단, 내 세속적 기준으로 가득차 있다면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여러분은 잠자고 있을 것이고 눈을 뜨지 못하고 눈을 뜬다 하더라도 놀라 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준비되어 있는 자들은 주님 다시 오실 때에 할렐루야 호산나를 외치며 찬양하게 되고 도망가지 않을 것입니다. 바락은 하나님의 메시지가 주어졌을 때에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믿지 못하여 드보라가 함께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즉 드보라가 함께 있어야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반쪽짜리 순종을 하고야 맙니다. 말이 반쪽이지 결국 하나님을 믿지 못했고, 드보라는 이 승리의 영광은 아무리 현장에서 싸우는 것이 바락이라 할지라도 결국 다른 이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이렇게 전쟁의 현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예수가 이 세상의 기준으로 가장 미약한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나의 기준, 나의 세속화, 나의 판단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능력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일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별하기 위해서 성령 하나님과 교제하며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메시지를 주시고, 예수님이 다시 오시고, 성령 하나님이 내 양심에서 역사하실 때 그 메시지에 순종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과 교제하시며 다시 주시는 은혜로 풍성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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