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오늘도 명예로운 삶으로 우리를 인도해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성전을 정결케 하시고 여러가르침을 전하시니 많은 이들이 이렇게 궁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어디로부터 시작한것이기에 우리가 알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인가?"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세금논쟁을 펼쳤고, 사두개인들은 부활논쟁을 펼쳤습니다. 어떤 이는 가장 큰 계명에 대해서 묻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가히 그 누구도 예수님의 신학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탁월하였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이 이럴 수 있으셨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신으로써 인간에게 가장 적합하고 지혜로우며 합당한 가르침을 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예수님이 반대로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예수님의 근거, 출발점에 대해서 시비를 걸려고 하는 바리새인들에게 과연 어떤 질문을 던지실까요? 41-42절입니다.
41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42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구약 전문가인 바리새인들에게 "그리스도",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하러 한 사람을 보낼텐데 그리스도라 칭하는 기름부음을 은, 그러니까 선택을 받은 그 사람은 어느 혈통, 가문에서 나겠는지 물으십니다. 바리새인들은 너무나도 손쉽게 이사야서에서 반복되며 예언된 바와 같이 "다윗의 가문"에서 날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참신이면서 참인간으로 구속주로서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다윗왕과 같은 위대한 왕으로 로마압제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이스라엘의 부흥을 이끌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사람이 나타나 이스라엘을 일으킬 생각은 안하고, 자신들을 비판하고 성전을 뒤엎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니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사역의 근거, 가르침의 명분에 의심을 품었고, 예수님은 이것에 있어서 못을 박으시려는 것이죠. 예수님이 두 번째 질문을 이어서 던지시는데 43-45절입니다.
43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44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45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조금 헷갈리시죠? 쉽게 말씀드리면 예언에 그리스도는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난다 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선조는 다윗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언을 할 때에 그리스도를 "주"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윗이 말한 예언의 내용은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에게 말하시길 사탄마귀를 예수의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후부터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의 내용이죠. 어쨌든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엑 왜 다윗이 자신의 후손을 향해서 "주"라고 부르고 있는지 대답해보라고 질문을 던지십니다. 46절입니다.
46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왕으로 임하셨고, 재판관으로 성전을 엎으셨습니다. 이번에는 말씀교사요 선지자가 되어서 말씀을 백성들에게 올바로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이스라엘에게 삶의 인도자요, 영혼의 인도자요, 인생의 인도자로 오셨습니다. 신이자 인간이신 예수님이 인도하시니, 그 누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으며 자신이 더 잘 인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을 아무도 못하고 더 나아가 예수께 더 묻는 자도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의 길을 정해놓고 예수님께 기도로 강요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히려 나의 인생을 완전하고 선하게 인도하시는 예수님께 물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나의 선택과 언행에 있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이 보시기에 선하고 명예로운지 물어가며 나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참 신이시자 참 인간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오늘도 풍요롭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dY-rRLHJ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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