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오늘도 우리를 명예로운 인생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루살렘에 왕이자 재판관으로 예수님이 오셔서 성전을 엎으시고, 많은 말씀교사들을 지탄하셨습니다. 특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각각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적용하려 했던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본뜻을 왜곡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지요. 그런 가운데 예수님께 진지한 가르침을 얻고자 한 말씀교사가 예수님께 다가와 묻고자 합니다. 34-36절입니다.
34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35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36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그의 질문을 "시험하여"라고 마태는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악의적인 시험이라기 보다는 예수님의 지혜를 진중하게 받아들여 대화를 청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질문이 무엇이었습니까?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헌법을 논할 때에 어떤 것이 더 "상위법"이냐라는 것을 따지면서, 한 상황을 두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하는가를 따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가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 위헌여부를 따지기도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율법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상황에서 항상 기준이 되어주고, 그 어떤 법도 더 상위법이 될 수 없는 가장 큰 상위법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지요. 단순한 질문이지만 또 율법 전문가인 예수님과 율법사 사이에서는 가장 본질적이고 심오한 질문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예수님은 과연 무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40절을 먼저 볼까요?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이 두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큰 계명이라하면 하나일 줄 알았는데 예수님은 이 두 계명이 가장 크다고 하십니다. 그럼 우리는 여기서 질문이 들게 됩니다. 이 두가지는 그럼 서로에게 상위법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인가? 그렇습니다. 과연 어떤 계명이길래 이렇게 애매하게 말씀하시는 것일까요?게다가 예수님은 이 두개를 두고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대제사장, 서기관, 율법사들에게 가장 권위있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모세의 가르침, 위대한 다윗의 가르침과 위대한 솔로몬의 지혜 , 믿음의 선진 아브라함의 일생,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구약성경아닙니까?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표현한 것이 이 권위있는 자들의 말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의 권위를 누가 무시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이 권위자들의 공통적인 가르침이 가장 큰 계명을 "2개"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 2개는 서로 어느 것 하나 위에 상위법으로 있을 수 없다, 같이 공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 계명을 예수님은 37-39절처럼 말씀하십니다.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두가지를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가지는 서로 공존하고 함께 하는 것이지, 결코 하나가 더 우선시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도 사랑합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하나님만 사랑한다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39절에서 예수님은 둘째도 그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시면서 가장 먼저 하나님을 사랑함을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을 사랑함이 이웃을 사랑함으로 나타나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위에 또는 먼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첫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님을 사랑하는 자가 이웃을 사랑하지만,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가장 큰 계명을 하나님을 사랑함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말씀교사들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을 사랑할 때 마음, 목숨, 뜻을 다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서 이웃을 사랑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예수님은 "네 자신을 사랑하듯"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죽으러 이 땅에 그리고 예루살렘에 오신 예수님이 보여주신 가장 큰 사랑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예수님따라 명예로운 인생 살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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