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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마태복음_명예로운 삶

마 21:1-11

by 우루사야 2022. 7. 21.

 

 

 

1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더라

10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오늘도 명예로운 삶으로 우리를 안내해주시는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죽으러 가는 그 자리와 가까워지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자기자신을 부인하고 죽이라고 합니다. 다른 이의 종이 되기 위해 낮아지고 섬기라고 합니다. 그렇게 나를 낮추고 죽이는 그 자리에 점점 예수님과 같이 가까워지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명예로운 삶이라고 말이죠. 예수님과 같이 살아가는 그 삶을 하나님이 높이실 것이라고 말이죠.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1-3절입니다. 

1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2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3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예루살렘은 5개의 언덕이나 산으로 둘러쌓여서 천해의 요새라고 불리우는 도시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본문에서 나오는 감람산입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에 가까이 당도하셨지만 아직 들어가지는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마을에 미리 두 제자를 보내서 준비된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죽으러 가시는데 왜 이런 과정을 가지려고 하시는 것일까요? 4-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5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구약에서 하나님이 보낸 사람, 메시야에 대해서 "나귀를 타고 올 것"이라고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예언이 있게 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가랴 9장 9절에서 메시야에 대해 이렇게 예언되었습니다. "9시온의 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인류의 대표자를 보내고자 하셨습니다. 그 대표자는 왕이 될 것입니다. 온 인류를 대표해서 무언가를 해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이 되는 즉위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람은 인류의 대표가 되는 즉위식 이후에 인류에게 "공의와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런데 그 왕은 세상의 인간왕과는 달랐습니다. 높은 자리, 화려한 말 위가 아니라 "겸손하여서 짐을 짊어지는 나귀"를 탈 것입니다. 인간의 죄짐을 감당하기 위한 왕으로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메시야를 예비하셨기에, 선지자들은 이 가르침을 전해주었고, 예수님은 실제로 그 예언을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짐을 떠넘기는 인간왕같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의 책임을 함께 져주시며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주시는 가족이요 맏형으로서의 왕이 되어주십니다. 겸손하시어 우리에게 권위와 억압을 베풀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섬겨주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이 왕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죄를 주인으로 삼고 제멋대로 자신이 왕인것 마냥 살아가는 자들은 죄 안에서 죽게 두실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나귀새끼를 데리고 옵니다. 6-9절입니다. 

6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7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8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9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더라

드디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죽으러 가는 길이지만, 예수님은 한 사람으로써 죽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대표자이자 왕으로써 예루살렘에 죽으러 가십니다. 인간의 모든 죄짐을 가지고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그 주변에 있던 제자들이나 무리들은 이것을 알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인지 그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특히 사람들이 자신의 겉옷을 예수님을 위해 나귀 위에 펼치기도 하고 나귀가 걸어갈 길에도 펼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려나뭇가지를 흔듭니다. 또 어떤 이는 호산나라고 외치기도 하고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찬송소리가 넘쳐납니다. 그런데 그 행렬이 작지 않았나 봅니다. 예루살렘 도성 안에서 무슨 일이냐 물을 정도니까 말이죠.  

겉옷이나 종려나무가지나 찬송하는 소리나 모두 하나같이 "왕되신 예수님"을 반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그 왕을 아직도 모르는 이들은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소동이 일어납니다. 10-11절입니다. "10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누구도 예수님이 오신 이유와 목적을 분명하게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의미와 목적, 뜻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왕이 우리의 인생에도 들어오시도록 마음을 열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나의 죄를 위해서 죽어주신 예수님, 그러나 나의 왕되신 우리 예수님. 그 예수님을 따라가고 영접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주님께서 나의 왕이 되셔서 나의 영혼과 의지, 생각, 감정, 인생길을 천국으로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uyroMAFNXk&list=PLnd_K0b0FFau55w22SN_G_8vH3VY8J6ve&index=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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