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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마태복음_명예로운 삶

마9:32-38

by 우루사야 2022. 6. 9.

32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33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34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35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오늘도 명예로운 삶으로 우리를 초대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오늘은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본문의 뒷부분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7-38절입니다. 

37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부 하나님께 "추수할 일꾼을 보내 주소서"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곧 이 땅을 떠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땅에서 왕노릇을 해야 합니다. 왕이 떠나 대리인으로써 이 땅을 다스려야 합니다. 다시금 귀신이 이 땅을 정복하지 못하게끔, 예수의 대리자들로써 귀신을 내쫓고 병나음과 죄사함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역할을 감당할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라는 평가를 내리십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곳곳에는 아픔으로 가득한 자들이 넘쳐납니다. 36절을 볼까요? 

 

36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예수님께서도 예수님께 다가오는 수 많은 아프고 병든 자들을 보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이 아파하는 것으로 공감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떠나 질병으로 고생하며 기진맥진해 있는 모습, 돌보는 이가 없어 홀로 아파하고 있는 고아와 같은 모습을 보고 아파하셨습니다. 그것을 목자없는 양같다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반대는 무엇이라는 겁니까? 본래 인류는 하나님 아버지 아래에서 보호받으며 돌봄을 받는 존재라는 겁니다. 고생하지 않고 기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목자있는 양들이 맹수들에게 찢기지 않고 보호받으며 푸른 초장에서 자유로이 다니듯이 인류는 본래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창조물 속에서 병들지 않고 생명력 넘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들이 죄로 타락하여 마귀에게 현혹당하고 결국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두고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기도문은 무엇일까요?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이런 기도문을 말합니다. "주 우리 아버지,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죄로 죽어가고 있는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죄 이후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성령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집에, 나라에, 왕국에서 왕노릇을 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죽어가면서도 명예로울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있는 또 다른 병자가 예수님께 다가옵니다. 32-33절입니다. 

32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33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마태는 그냥 병자의 치유를 말할 생각이 없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의 병치유가 "천국의 가까옴"을 증명하고 있음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가는 과정임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귀신들려서 말 못하는 사람"이라고 분명한 원인을 밝힙니다.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치며 앞을 못보던 자들이 치유를 받은 후입니다. 눈이 어두운 자들이 하나님이 약속한 다윗의 혈통에서 한 사람으로 치유를 받아서 눈이 밝아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이에 다시 한번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본심,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예수께 그 사람이 다가가니 귀신이 쫓겨나갑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이 창조주입니다. 그러니 귀신이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음이 당연합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를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예수의 영이신 성령하나님과 교제하며, 예수의 구속의 십자가를 기억하며 죄사함이 나에게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악한천사, 타락한 천사, 사단마귀, 공중권세 잡은 자는 우리에게 가까이 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영적결과를 보니 사람들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라고 평합니다. 하나님 외에 이런 일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없지요. 그런데 이제 천국이 가까이 오니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예수와 한형제가 된 우리가, 성령이 내주하시는 우리가 할 수 있음을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는 바리새인들은 섣부른 해석들을 꺼내놓기 시작합니다. 34-35절입니다. 

34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35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이런식으로 비하시키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후에 마태복음 12장에서 "사탄이 사탄을 내쫓으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26)라고 반문하십니다. 말이 안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사역은 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생명이 죽음을 몰아내고, 인간이 본 모습을 되찾아가는 회복의 사역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그 회복의 때가 임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가르치십니다. 이제 예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된 너희가 스스로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마치 실습생들을 데리고 알려주시듯이 제자들을 데리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십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선언하십시오. 믿으십시오. 예수님의 천국복음은 이미 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예수의 영이 계십니다. 예수님을 부활시킨 성령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목자 없는 양같이 항상 움츠리고 염려하며 살아갑니까? 우리의 시야와 시선이 내 인생을 잘못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시선으로 우리는 인생의 염려를 정복하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죽음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몸은 노쇠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그 죽음을 향해 당당해 나아가 예수의 힘으로 죽음을 몰아내며 부활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이렇게 명예롭게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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