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기에 율법을 지키려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저절로 율법을 살아내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을, 그것이 빛과 소금의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실제적인 예를 들어주시며 말씀해주셨습니다. 21-22절입니다.
21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예수님 시대 이전 선조들이 율법을 가지고 말하던 선조들의 가르침을 들어 예수님은 말씀하고자 하십니다. 예전에는 살인을 하면 심판을 받을 것이니 살인을 하지말라! 라고 가르쳤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의 미움과 욕망, 이기심이 더 커지면 결국에는 살인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것은 인류가 아담 첫시대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온 본능아닙니까? 결국 "살인하지말아라!"라는 가르침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가르침이 인류에게 온전해지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해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과 같이 내 곁에 있는 지체를 사랑하는 사실을 알고 이해한다면, 살인하여 심판받을 뿐만 아니라 그 형제에게 분노로 상처를 주고, 그 형제에게 모욕을 주는 자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인의 근거가 되는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시는 겁니다. 우리 마음에 미움, 시기, 이기심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있을 때 우리는 미움과 시기, 이기심을 떨쳐버릴 수 있고 더 나아가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율법을 온전히 이룬 자의 삶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에 결단코 다다를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만족이 아니라 "기쁨"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내면 하나님이 그것을 보고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어느샌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형제를 향한 미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어져 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다른 예시에서도 적용이 가능하기에 예수님은 다른 예시를 들어주십니다. 이번에는 예배드릴 때입니다. 23-24절입니다.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수님은 예배를 드릴 때에 형제와 갈등이 있는 상황에 대해서 예시를 제시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곧 타인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율법을 살아내는 자는 일관성이 있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형제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사건이나 일화가 있다면 그것부터 먼저 직면하는 것이 맞지 예배를 드린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신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살아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24절에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을 멈추고 형제와 사랑을 회복하고 다시 하나님 앞에 서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관성있는 삶을 가지고 와서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일관성이 깨져버린 상황에서는 그것을 먼저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씀해주십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됩니까? 25-26절입니다.
25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26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서로 화해하지 못하고 분쟁과 갈등이 이어지면 결국 심판의 자리로 옮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옥에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갈등을 키워 심판, 정죄, 옥살이로 키우지 말라는 겁니다.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내라는 겁니다. 화해라는 것은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고 듣고 말하는 힘든 과정이 수반되어있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분노는 쉽습니다. 그대로 두면 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도 우리를 아프고 힘들게 합니다. 그 힘든 과정을 차라리 사랑을 위해 하나하나 살아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빛과 소금이 살아내는 방법이라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때문에 살아내는 삶이라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무서워하며 살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날 사랑한다는 그 사실을 가지고 그 사랑을 가지고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십시오. 그럴 때 그 사랑은 이웃과 화해하며 살아가게 해줍니다. 그 사랑은 마침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게끔 해줍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율법의 완성된 삶을 살아내시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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