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4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5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 많이 와닿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과학과 경험, 실험으로 증명하여 믿고 인정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비롭고 역설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그대로 내버려 둡니다. 우주의 시작이나 인류의 시작, 생명이나 성과 같은 이슈에 있어서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서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럼 고대에는 어땠을까요? 현대와는 반대로 "신"의 존재에 대해서 너나 할 것없이 모두가 한 마디씩 던지곤 했습니다. 우주의 근원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물이다, 누군가는 흙이다, 누군가는 불이다 등과 같은 식으로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 고대그리스 철학이 가장 많이 앞장섰지요.
그래서 로마나 에베소, 골로새 지역에도 이러한 "가르치려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골로새 교회에도 그런 가르치려는 자들이 많이 있었고,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가르치려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묘하게 신앙과 자신의 생각"을 섞어서 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2장에서 바울은 그런 자들에 대한 문제를 다루려 합니다. 1-2절입니다.
1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2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바울은 명확합니다. 2절 뒷부분에 보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말하며, 바울은 여러교회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신의 비밀과 신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힘쓰"는지를 알아달라고 말합니다. 1절을 보니 라오디게아 교회가 등장합니다. 골로새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가까운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모르는 자들을 위해서도 힘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공동체와 지체들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통로로 "하나님에 대해서 알기를" 힘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통로여야 같은 고백을 하고 같은 신앙을 가져 연합하고 서로 위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연합을 방해하려는 "자신의 생각으로 가르치려고 하는 거짓교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연합과 사랑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가르침도 아니고 또 바울 자신의 가르침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자와 이웃을 사랑해야죠. 내 생각으로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깨달아 그리스도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앎으로써 우리는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짓교사들 거짓목사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면 채워주신다는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상거래꾼으로 전락시키는 못된 가르침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를 넉넉히 사랑하시고 또 채워주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 "깨닫는 것"입니다. 무얼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주신 사랑을 깨닫는 것, 그래서 엎드리고 겸손히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사랑을 확인하고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 방향성으로 하나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거짓교사들이 틈을 타기 때문입니다. 3-4절로 이어집니다.
3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4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그리스도 안에는, 그리스도를 알고 깨닫는 그 과정 안에는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속에 지혜와 지식이 있습니다. 즉 이단, 거짓교사들, 비복음적 목사들의 가르침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어야, 온 교회가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어야 이단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달콤하고 신비로운 것을 풀어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살펴보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가리고 또 풍성히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그것을 바울은 "교묘한 말로 속이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맞는 말 같이 보이는데 틀린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것을 분별해줄 수 있는 것은 "진짜"를 아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풍성히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숨어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품고, 그리스도를 향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 우리는 그 지혜와 지식으로 서있을 수 있습니다. 5절로 이어집니다.
5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바울은 여기서 군사적인 용어 "질서와 굳건"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리스도를 필두로 서 있는 대열을 맞춘 군사들은 그 어떤 거짓교리와 거짓가르침의 세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 대열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굳건하게 서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교회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를 배워야 합니다. 혼자서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전달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 안에서 함께 공동체 안에서 삶에서 그리스도를 배우고 깨닫고 그 속에서 지혜와 지식을 얻어 우리는 죄와 악, 거짓무리들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그 주님은 나의 생각의 중심에 지혜를 주실 겁니다. 나의 삶에 지식을 주시어 앞으로 나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나의 이웃과 교우들과 사랑을 나누어 행복하게끔 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그렇게 풍요하게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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