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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예레미야_넘어지는 인생, 세우시는 하나님

렘 42:1-17

by 우루사야 2021. 10. 28.

1이에 모든 군대의 지휘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나아와

2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

3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4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무릇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말하리라

5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6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7십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

8그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 지휘관과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부르고

9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보내어 너희의 간구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이렇게 이르니라

10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라

1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12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리니 그도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백성은 바벨론 침공으로 모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피난을 떠나 유럽이나 인근 중동지역으로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주민을 포로로 끌고 가셔서 그들로 하여금 다시금 70년 후에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고자 하십니다. 또한 유다 땅에도 남은 주민을 두심으로써 그들에게도 회복의 기회를 주고자 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남은 유다주민의 세번째 리더로 등장하는 그다랴와 그 주변인들에 대해서 오늘 예레미야서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함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1-3절입니다. 

1이에 모든 군대의 지휘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나아와2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3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오늘 전 본문에서 그들은 바벨론이 다시 침공할까 두려워 애굽으로 피신을 가려했습니다. 왕족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살해하면서 그 주변에 있던 바벨론 군사까지 함께 죽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마엘은 백성을 버려두고 암몬족속에게로 도망을 갔습니다. 이제 남은 리더는 요하난밖에 남지 않았고,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애굽으로 가기로 결정했던 것이죠. 그런데 조직내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요하난에게 심정의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그들은 예레미야에게 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자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표현은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당신의 하나님"이라고 계속해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 당시 유다 땅에는 많은 우숭숭배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어느 땅의 신, 어떤 재물을 주관하는 신, 어떤 영향력의 신 등 다양한 신에게 "자신의 두려움과 소원"을 간구하는 문화였습니다. 그 중에 하나인 예레미야의 신, 여호와 하나님의 신"에게도" 물어보아 확답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요하난의 신앙의 밑바닥이 드러나는 표현 중 하나입니다. 4-6절에서 이어집니다.  

4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무릇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말하리라5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6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참으로 예레미야서를 묵상하면서 오랜만에 듣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골라서 듣는 것이 아닙니다. 약이 쓴 것처럼, 우리 심령이 회개하고 깨닫게 하는 말씀은 우리가 불편하고 힘들고 아픈 것입니다. 힘든 것이죠. 마태복음 19장에서 부자청년이 기억납니다. 율법도 열심히 지키고 착실하게 살아온 청년입니다. 그럼에도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몰랐던 그 청년은 어떤 더 선한일을 해야 구원을 얻는 것인지 물으니 예수님이 "네가 온전해지고자 한다면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이에 청년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22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19) 온전해지는 길은 이처럼 힘듭니다. 나의 제일 우선순위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내려놓는 것은 "나를 내려놓는 것"이기에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으로 항상 "쓴 약"을 먹어야 합니다. 항상 내가 하나님보다 먼저 우상삼은 것이 있다면 계속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하난과 그 무리들도 "좋든지 좋지 않든지 순종"하려는 그 마음의 결단에 대해서 예레미야는 쓴 약 같은 지적을 합니다. 4절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간 왜 유다의 멸망을 말씀하셨습니까? "관계의 회복"이었습니다. 인격적인 하나님과 백성 간의 신뢰의 회복이 이뤄지게끔 하나님은 재난을 보내셨습니다. 그간 유다는 우상숭배로 자녀를 제물로 바치고, 과부와 고아같은 미약한 자들을 돌보지 않았으며, 부정부패힌 왕과 고관들은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단절은 이런 결과를 낳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너희의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관계회복의 시작"에 대해서 이렇게 답합니다. 

7십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8그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 지휘관과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부르고9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보내어 너희의 간구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이렇게 이르니라10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라

십일이 지났습니다. 바벨론 군사의 보복이 언제 올런지 불안해했던 그들은 아마 너무나도 긴 시간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그래도 그들은 기다렸고, 마침내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에는 예레미야서의 주제표현 "심고 뽑다"가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순종하려는 마음이 진실하다면, 하나님은 재난을 멈추고 그들로 다시금 이 땅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재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기까지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목적은 그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 회복하는 것, 다시 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종하는 마음이라면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그간 계속해서 권했던 "복음"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도구를 받아들이라고 말이죠. 11-12절입니다. 

1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12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리니 그도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리라 하셨느니라

바벨론 왕을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손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세 가지를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신론의 하나님, 창조해놓고 멀리 떨어져 계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성육신으로 인류의 죄짐을 지시는 하나님, 성령강림으로 우리의 육신과 심령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는 "불쌍히 여기리니"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물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피조물인 우리에게 세상의 청지기라는 위대한 직분을 주셨고,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권한과 힘을 주셨고, 우리의 죄악이라는 실수를 해결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회복하게 해주십니다. 세 번째, 본향으로 돌려보내리라. 유다 민족이 살던 땅으로 어떻게든 돌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세우실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세운 바벨론왕과 나라를 통해서 유다 민족을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라서 1장 1-2절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1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2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3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이에 예레미야는 믿음의 결단의 순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겁내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이죠.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이죠. 보이지 않지만 그 분의 다스림을 믿어야 합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눈에 너무나 이해되지 않고 쓸모없으며 모순되는 것 같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우리의 지성과 이성의 한계를 드러내는 순간입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존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의 섭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럴 땐 그들이 처음에 고백한 것처럼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이것이 옳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까 그 분의 방법과 도구를 믿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믿습니다. 그 사형수를 믿습니다. 그 사형사건을 믿습니다. 2천년 전에 한 사람의 죽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계획하셨고, 성경 전체가 그것을 말하고 있으며, 성령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 심령 속에서 그 십자가를 증거해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지 않으니 십자가가 미련해보입니다.

"22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23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24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25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고전1)

우리가 후에 다시 묵상하게 되겠지만, 요하난과 그 무리들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이지요. 결국 그들의 순종에 대한 결단은 외식, 거짓말, 하나님을 이용하고자 하는 보증서 역할로만 여겼습니다. 순종은 본래 태도로 말미암아 자연스레 나타나는 신앙의 행동입니다. 그들이 본래 하나님의 메시지를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다면 애굽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결국 그들은 결단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미련히 여겼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인생길에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여전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장차 우리에게 왕으로서 심판자요 신랑으로 오실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에 따라 그분이 신랑이 되실 수도 있고 심판자가 되실 수도 있습니다. 오늘 깨어 믿음으로 살아냄으로써 우리는 그분을 신랑으로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 내 심령에 흐르는 십자가 보혈, 성령 하나님의 내주하심으로 명예롭게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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