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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예레미야_넘어지는 인생, 세우시는 하나님

렘 37:11-21

by 우루사야 2021. 10. 18.

11갈대아인의 군대가 바로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에서 떠나매

12예레미야가 베냐민 땅에서 백성 가운데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그리로 가려 하여

13베냐민 문에 이른즉 하나냐의 손자요 셀레먀의 아들인 이리야라 이름하는 문지기의 우두머리가 선지자 예레미야를 붙잡아 이르되 네가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

14예레미야가 이르되 거짓이다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이리야가 듣지 아니하고 예레미야를 잡아 고관들에게로 끌어 가매

15고관들이 노여워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 집을 옥으로 삼았음이더라

16예레미야가 뚜껑 씌운 웅덩이에 들어간 지 여러 날 만에

17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이끌어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이르되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 또 이르되 왕이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

18예레미야가 다시 시드기야 왕에게 이르되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

19바벨론의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 왕의 선지자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20내 주 왕이여 이제 청하건대 내게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에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21이에 시드기야 왕이 명령하여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 두고 떡 만드는 자의 거리에서 매일 떡 한 개씩 그에게 주게 하매 성중에 떡이 떨어질 때까지 이르니라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머무니라

 


 

어제 본문에서 애굽군대때문에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포위를 포기하고 떠날지라도 다시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예언은 시드기야 왕에게는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힘든 예언이었습니다. 자신이 바라고 꿈꾸는 현실과 정반대의 예언이기 때문이죠. 어쨌든 아직까지는 현실에서는 자신이 바라는대로 "11갈대아인의 군대가 바로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에서 떠나"갔습니다.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던 바벨론이 떠나가니 도시가 잠시나마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양식을 성으로 들여오고, 잠시 멈추었던 상거래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도시에 생기가 부는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도 이 시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삼촌의 땅을 사라고 하였던 그 때의 일을 기억하며, 이 때 예루살렘에서 나와 삼촌 땅이 있는 고향 베냐민 땅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예레미야의 길을 막아섰습니다. 12-15절입니다. 

12예레미야가 베냐민 땅에서 백성 가운데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그리로 가려 하여 13베냐민 문에 이른즉 하나냐의 손자요 셀레먀의 아들인 이리야라 이름하는 문지기의 우두머리가 선지자 예레미야를 붙잡아 이르되 네가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14예레미야가 이르되 거짓이다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이리야가 듣지 아니하고 예레미야를 잡아 고관들에게로 끌어 가매15고관들이 노여워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 집을 옥으로 삼았음이더라

이 본문을 통해 우리는 예레미야의 명성과 함께 예레미야를 향한 이스라엘의 정서를 엿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애굽이라는 강대국과 손을 맞잡아 바벨론이라는 적국을 물리쳐야 한다고 말할 때, 예레미야는 반대로 이야기했습니다.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바벨론에게 차라리 당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악과 죄를 일삼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살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메시지에 대해서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베냐민지파 땅까지 그에 대한 명성이 퍼져나갔습니다. 물론 긍정적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말이죠. 매국노로 퍼져갔습니다. 그러니 문지기의 우두머리 이랴는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을 떠나 바벨론에게 항복하러 간다는 억측으로 예레미야를 잡았고, 고관들은 그 주장을 아무런 근거없이 믿어 예레미야를 때려 옥에 가두게 했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부정적이고 억측이 난무하는지 우리는 본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가 우상은 아무능력도 없다 하니, 이 메시지가 흥왕하여서 사람들이 우상을 사들이지 않게 되니 생업이 끊어지게 된 우상을 만드는 우상모형 직공들은 모여서 데모를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커져가기 시작하더니 온 도시가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누가가 기록하기를 "32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행19)고 했습니다. 결국 서기장의 중재로 청중들은 이성을 찾기 시작하였고, 이내 "40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41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행19)고 말할 정도로 이 모임은 햇빛에 안개사라지듯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를 향한 억측이 난무하여 감옥에 가두는 것 또한 에베소 데모처럼 실체가 없는 것 뿐이었습니다. 다만 우상모형 직공들이 자신들의 욕심으로 이 시위를 일으켰던 것처럼, 베냐민 문지기와 그 땅의 고관들 또한 자신들이 바라는 메시지가 아니었기에 예레미야를 가두고자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루살렘과 온 유다의 정서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바램 또는 욕심"이라고 평가해볼 수 있겠습니다. 그 욕심 때문에 예레미야는 옥에 가둬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은 명예가 없고 처신을 올바르지 않게 합니다. 시드기야가 그랬습니다. 옥에 가둬진 예레미야를 향해 시드기야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십시오. 16-17절입니다. 

16예레미야가 뚜껑 씌운 웅덩이에 들어간 지 여러 날 만에17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이끌어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이르되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 또 이르되 왕이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

예레미야가 가둬진 감옥은 사실 정식적인 감옥보다는 "독방"에 가까운, 환경이 매우 열악한 곳이었습니다. 땅에 웅덩이를 파서 뚜껑을 씌워둔 곳이기에 채광이나 통풍 조건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그 안에서 잠시 잠깐 있는 것으로도 아마 매우 견디기 힘든 조건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밭을 사라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바벨론이 잠시 자리를 떴을 때 갔던 것 뿐인데, 그는 오해를 받아 결국 이런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시드기야가 무어라 말합니까? "그에게 비밀히 물어 이르되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 왜 시드기야 왕은 비밀히 묻습니까? 자신이 예레미야를 싫어하고 또 그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전국민이 압니다. 그럼에도 그에게로부터 무언가 신적인 권위 또한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기는 싫습니다. 그러니 은밀하게 예레미야에게 물어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했던 겁니다. 

사람의 욕심이 과하면 이렇게 뻔뻔해지기 마련입니다. 욕심에 눈이 멀면 영적으로 어두워질 뿐 아니라 자신의 처신에 있어서도 좌우 앞뒤를 분간하지 못합니다. 그런 시드기야에게 예레미야는 단칼로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있지요. 시드기야 왕께서는 바벨론 왕에게 잡히게 되실 겁니다." 사람의 욕심은 사람의 의지와 주관으로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여태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괴물같은 욕망이기에, 단순간의 의지로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것이 시드기야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해왔던 예레미야를 보십시오. 옥에 갇혀진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왕 앞에서 지조있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일상생활과 평소의 태도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한 순간 받은 은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가 18절에 이어서 말하는 것을 들어봅시다. 

18예레미야가 다시 시드기야 왕에게 이르되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19바벨론의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 왕의 선지자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20내 주 왕이여 이제 청하건대 내게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에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서기관 웅덩이 감옥에서 시드기야가 부르니 잠시 나오게 된 예레미야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자신은 거기에 갈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왕 옆에서 간신들처럼 거짓말로 예언을 했던 왕의 선지자들이야말로 지금 어디있냐고 반문합니다. 그들이야말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왕을 이용한 것 아니냐고 말이죠. 예레미야 말로 하나님의 뜻을 왕을 위해서 있는 그대로 직언한 자였던 것이죠. 시드기야가 이 때 자신의 욕망을 조금 벗어던지고 이성을 찾게 되었습니다. 마치 에베소 청중들처럼 말이죠. 그래서 시드기야도 그를 서기관의 웅덩이 감옥이 아니라 정식 감옥 뜰에 두고 거기에 머무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룩은 여기에도 단서를 남깁니다. 21절입니다.

21이에 시드기야 왕이 명령하여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 두고 떡 만드는 자의 거리에서 매일 떡 한 개씩 그에게 주게 하매 성중에 떡이 떨어질 때까지 이르니라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머무니라

"성중에 떡이 떨어질 때까지" 즉 다시금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포위할 것이고, 식량공급을 받지 못하는 예루살렘은 다시금 식량난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는 미래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누가 옳았다는 겁니까? 하나님의 예언은 성취되고, 그 메시지를 전한 예레미야가 옳았습니다. 왕의 욕심은 틀렸고 그와 그의 신하와 거짓선지자들은 욕심과 욕망에 가득차 거짓의 마음으로 일관했던 겁니다. 

우리의 욕심과 욕망은 우리의 눈과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그래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긍정적 마음은 우리를 마비시킬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길은 우리에게 평안을 허락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고침을 받는 인생이야말로 의롭고 성결한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의 욕심과 욕망을 이겨낼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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