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만났습니다. 허나 감격스러운 포옹과 허그가 이어진 만남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더 가까운 사이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연합은 물리적인 연합이 아니라 "마음과 의지"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같은 발걸음을 걷는 사이"가 되자고 하십니다. 네, 여러분. 한 마음이 진짜 하나지, 한 공간에 있다고 가족이 아니고 같은 방향을 향해 서있다고 공동체가 아닙니다. 함께 발걸음을 맞추며 나아갈 때 그것이 하나죠. 1-2절을 보시죠.
1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2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제 이스라엘은 노예도 아니고 단순한 자유인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을 승계하고 지키고 또 다스려 세상에 흘려보내는 "하나님의 대리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것, "말씀하시는 것"을 이제 승계받게 됩니다. 이스라엘과 어떤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야 할지, 아버지 하나님과 장자 이스라엘이 어떻게 함께 나아갈 것인지, 그래서 이 세상을 어떻게 다시한번 재창조할 지에 대해서 이스라엘과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3-6절입니다.
3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5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6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깨지 말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어떤 것도 두어서는 안되는데, 특히 "너를 위한"(4) 어떤 것이 하나님을 대신하게끔 마음을 내어줘서는 안될 것입니다. 특히 고대에는 우상들로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하게끔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의 형상 자체를 만드는 것을 금하십니다. 당연히 그것들을 향해 어떤 행위를 하는 것 또한 금지죠. "질투하시는 하나님" 네, 하나님은 마음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관계를 맺으시는 분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7-8절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관계맺는 법을 말씀하십니다.
7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8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9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10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11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첫째,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입니다. 전능한 힘으로 선한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라고 살펴봤습니다. 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것은 "약속을 이루지 못하실만큼 힘이 없으신 분"으로 지칭하는 것이겠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말하고, 맹세하고, 기도하고, 찬양할 때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부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해서 예수님도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을 부를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끔 가르치셨죠. 전능함을 의미하는 하늘, 그리고 약속을 반드시 이뤄내신다는 의미에서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라고 하나님을 부르게끔 하셨습니다.
둘째, 안식일을 지킬 것을 말씀하십니다. 출애굽 성도들이 광야에서 배운 규례가 무엇입니까? 일곱째날에는 만나를 거두러 나오지 않아도 하나님이 먹이신다는 것이죠. 여러분, 본래 인간에게 노동은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에덴동산을 다스리는 왕의 권한이자 책무였죠. 그러나 아담이 범죄하고나서 그 노동은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바뀌었습니다. 천만다행인 것은 하나님이 그 책무까지 거둬가지 않으심으로써, 다시 노동의 참의미를 회복하여 다스리는 자로 복귀할 수 있도록 노동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노동은 죄의 저주가 아닙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노동을 통해 우리는 "안식"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네, 노동은 안식과 동전의 양면처럼 세트로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노동과 안식을 함께 십계명에 넣어주신 것이죠. 노동을 하며 힘써 일하면서 "참된 안식"을 바라보며 살게끔 말이죠. 자,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 아버지와 장자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뜻)이 전해졌습니다. 이제 그 말씀을 가지고 장자는 어떻게 차자를 비롯하여 주변인들을 대하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하나님은 말씀해주십니다. 12절부터 보시죠.
12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13살인하지 말라14간음하지 말라15도둑질하지 말라16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17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이 구절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웃을 사랑하라"로 귀결되지요. 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이웃을 사랑할 힘이 생기는 겁니다. 하나님아버지와의 관계를 맺는 자가 이웃에게 "장자로써 은혜를 흘려낼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결코 우리 힘으로 착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착한 사람으로 살 수 있는 힘과 여지"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약속하신 것들이 성취되는 것을 목격하며 풍성하게 살 수 있는 것이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도 어떤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어떤 것이 현실로 나타날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고대하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나와 만들어질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성취를 바라볼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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