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으로 예수님이 들어오셨습니다. 겸손의 왕이자, 수난받으러 온 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뜻을 돌이키지 않는 유대인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며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번에는 또 다른 감정을 드러내셨습니다. 이번에는 분노였습니다. 45-47절입니다.
45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46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47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48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예수님은 어려서부터 성전을 아버지의 집, 자신의 집으로 여기셨습니다. 마리아와 요셉과 함께 했을 때에도 육신의 부모를 떠나 성전에 머물기도 했죠. 성부 하나님이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집. 그런데 그곳에서 장사하는 이들이 보입니다. 단순히 제물로 바칠 동물을 파는 정도가 아니라 이건 "하나님을 이용한 수수료 장사"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기 위함은 언젠가부터 부차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유월절과 같은 큰 절기가 올 때마다 대목이니 장사하기 바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를 사라지게 만들려는 강도들을 내쫓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성전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구원이 무엇일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강도들은 여전히 뒤에서 수군거리며 자신들의 수수료장사를 엎어버린 예수를 어떻게 처치할까 찾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책잡을 꺼리가 하나 생각났습니다. 1-2절입니다.
1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2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대제사장들이 예수에게 어디 출신 어디학파인지에 대해 묻습니다. 즉 어떤 명분을 가지고 성전을 뒤엎고, 자신들의 사역을 방해하는지 묻습니다. 말이야 사역이지 그들은 장사치요 돈을 좋아라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종교적 학파의 위세를 지키며 그 장사의 권한을 유지하고자 했던 이들입니다. 자신들이 애써서 세워놓은 명분들을 예수가 한번에 무너뜨리려 하니 대항하는 것은 어찌보면 마땅하겠죠.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뒤따르니 이제는 종교지도자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교리대 교리로, 학파대 학파로써 명분을 통해 대결하고자 합니다. 마침 예수는 정식으로 공부한 적도, 종교계에 연줄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예수가 어떤 권위로 이런 일을 벌이는지 묻고자 하는 것이죠. 아마도 예수는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호락호락 당하는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세례요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세례요한의 권위가 어디로부터 나오는지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3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4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5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6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7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8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세례요한을 지지하기에는 종교지도자들이 그간 헤롯왕가와 함께 하느라 거리가 너무 멉니다. 그렇다고 세례요한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면 백성들로부터 척지게 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는 꼴이 되었습니다. 결국에 그들은 예수님 앞에서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던 것이죠. 예수님의 성전정화는 분명한 뜻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집이며 자녀들이 아버지와 교제하는 곳입니다. 그러니 분명한 행동이 나타나죠.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의 대답을 보십시오. 7절입니다.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모른다"였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행동의 발원, 우리 말의 시작점은 분명해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향해 질문할 때 우리는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고, 예수로 인해서 지금 우리는 자유를 누리고 있으며,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해 우린 어느 상황에서든 지혜와 용기, 기쁨, 사랑, 선한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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