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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사사기_다시 주시는 은혜

사사기 19:1-9

by 우루사야 2022. 11. 15.

1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2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 동안을 지내매

3그의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한 사람과 나귀 두 마리를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기뻐하니라

4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머물게 하매 그가 삼 일 동안 그와 함께 머물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다가

5넷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의 사위에게 이르되 떡을 조금 먹고 그대의 기력을 돋운 후에 그대의 길을 가라 하니라

6두 사람이 앉아서 함께 먹고 마시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밤을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 하니

7그 사람이 일어나서 가고자 하되 그의 장인의 간청으로 거기서 다시 유숙하더니

8다섯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이르되 청하노니 그대의 기력을 돋우고 해가 기울도록 머물라 하므로 두 사람이 함께 먹고

9그 사람이 첩과 하인과 더불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 이제 날이 저물어 가니 청하건대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찍이 그대의 길을 가서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 하니



오늘도 다시 은혜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사기서는 계속해서 타락하는 이스라엘을 붙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 다시 은혜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보아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사사기 결론부에 해당하는 마지막 사건, 극악무도한 타락상이 드러나게 됩니다. 여기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실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이런 극악무도 속에서도 사사기 이후에 사무엘을 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또 다윗을 주신 하나님, 솔로몬을 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가히 태평성대를 누린 이스라엘이었지요. 죄가 있는 곳에 은혜를 덮어주시고 더 해주시고 입혀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1-3절입니다. 

1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2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 동안을 지내매3그의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한 사람과 나귀 두 마리를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기뻐하니라

이 사건에서도 시작은 "왕이 없"는 것을 지적하며 시작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여기서 왕은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는 자"를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알려줄 자를 말하죠. 그간 사사들이 그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는 자가 없으니, 말씀이 없으니, 은혜가 없으니 백성들은 제멋대로 생각하고 사고하고 판단합니다. 운전할 때 차이 없다면 마음대로 운전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다른 차들과 결국 사고가 나버리니 더 좋지 아니한 것이겠죠. 차선이 나의 운행을 안전하게 지켜주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네 인생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복된 길로 인도해준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차선이 없는 인생 중 하나로 레위사람의 부부가 등장합니다. 앞서 본 미가의 가정의 이야기로 이스라엘의 타락상을 보았듯이, 이번 사건에서도 한 가정에서의 일로 이스라엘의 타락상을 살펴보게 됩니다. 베들레헴에서 결혼합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베들레헴은 레위인에게 허락된 성읍이 아니었습니다. 지파들이 레위지파를 돌보지 않으니 이렇게 레위인들이 각자 자신이 살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지요. 그렇게 결혼했지만, 아내는 바람을 피고 결국 집을 나가 친정으로 갑니다. 하지만 레위인은 아내를 잘 설득해서 돌아오고자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장인이 그 레위인을 막아섭니다. 

4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머물게 하매 그가 삼 일 동안 그와 함께 머물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다가5넷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의 사위에게 이르되 떡을 조금 먹고 그대의 기력을 돋운 후에 그대의 길을 가라 하니라6두 사람이 앉아서 함께 먹고 마시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밤을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 하니7그 사람이 일어나서 가고자 하되 그의 장인의 간청으로 거기서 다시 유숙하더니8다섯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이르되 청하노니 그대의 기력을 돋우고 해가 기울도록 머물라 하므로 두 사람이 함께 먹고9그 사람이 첩과 하인과 더불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 이제 날이 저물어 가니 청하건대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찍이 그대의 길을 가서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 하니

수차례나 장인은 레위인과 딸이 집으로 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이것이 후에 이 부부가 당하게 될 참상에 어떤 영향력을 주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장인은 사위와 딸을 극진히 대접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입니다. 장인은 일찍 일어나 가려고 하는 사위를 계속해서 붙들어 둡니다. 사실 부부사이가 깨어질 위기에 있으니 이 부부는 얼른 가정으로 돌아가 다시 하나하나 시작해야 하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계속 장인의 노력이 점점 부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듯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지막날이었습니다. 마지막날에 레위인은 떠나려 해도 만류하는 장인의 설득에 이제 넘어가지 않습니다. 결국 결단하여 밤이 되서야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살펴보겠지만, 아침일찍 떠났다면 집에 도착했을 이 부부는 밤에 출발하여 다른도시에서 밤을 보내다 참변을 당하게 되지요. 사실 장인도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 그들을 일찍 보냈겠지요. 누가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겠습니까? 문제는 "질서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장인이어도 한 가정의 가장인 레위인이 가정을 세우러 가는 길이라면 보내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장인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친절만 생각했던 것이지요. 게다가 지금 자신의 딸이 왜 친정으로 왔습니까? 그녀가 행음했기 때문아닙니까? 성적타락을 저지른 판국에 그나마 사위가 다정하게 그녀를 돌보러 온 것이지요. 

우리는 이 이야기를 단순한 에피소드로 읽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앞의 사건과 지금 이 사건의 공통점은 모두 배경장소가 베들레헴이라는 것과 그곳에 있어서는 안되는 레위인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두 사건의 레위인은 "하나님이 선택한 지파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근근히 살아가는 인생"을 보여줍니다. 결국 자신의 힘으로 살고자 머물러서는 안되는 곳에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들이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이 지정해주신 성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지파들이 레위인을 돌보지 않으며, 생활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자신의 이해와 힘을 가지고 생활을 위해 나왔습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떠나고 복을 내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죠.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을 향해 메시지를 던져주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떠나지 말라고 말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점점 타락한 가정이 되어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일상이 무너집니다. 그렇게 점점 하나님의 복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지는 것이지요. 마치 모래성이 파도에 점점 깍여 무너지듯 말이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의 하루의 일상, 이웃과의 말한마디, 나의 사소한 습관과 버릇으로부터 나의 영성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말하고, 나의 인생을 덮고 계시는 예수의 구원을 기억하며 생각하고, 나와 지금 함께 계시는 성령 하나님을 기억하며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할 때 굳건한 반석 위에서 우리의 인생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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