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34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35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7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38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39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40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42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45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46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오늘도 명예로운 삶으로 인도해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면서 하나님의 본래의 뜻과 의도를 회복하시는데 주력하십니다. 성전을 정결케 하십니다. 제자들에게 무화과나무 앞에서 산과 바다를 옮길 권한을 가진 것을 기억케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세운 질서와 수익구조를 포기하지 못하고 의도와 출처만 계속 요구하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말씀을 먼저 받은 자의 불순종"이라고 말씀하시며 비판하십니다. 그들은 먼저 받은 자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이와 같은 주제로 비유를 하나 더 들려주십니다.
33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34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왕으로 임하셨습니다. 그것도 결산하러 오는 왕이라고 계속 말씀드렸습니다. 그 왕은 결산할 것입니다. 심판할 것입니다. 잘잘못을 가리고, 상줄 이에게 상을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실천하고 전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욕심과 죄를 합리화하련느 이들에게 심판을 주실 것입니다. 본문 34절에서 예수님은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라는 비유를 드시는 이유도 그러합니다. 예루살렘에 누구를 결산하십니까? "세를 준 농부들"이었습니다. 즉 주인의 것을 빌려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주인의 것을 통해서 소득을 일으키지만, 일정의 수수료 명목을 주인에게 마땅히 주어야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주인이 머나먼 타국으로 가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러합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생이라는 삶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듣고 소망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예로운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인생에 대해서 예수님이 마지막 날에 우리인생을 두고 판단하실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인생을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인생을 예수님이 천국을 만드실 때 사용하시려고 할 때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돌아와 포도원 주인은 일정의 수수료를 받으려고 종을 불러 농부들에게 보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비유에 등장시키는 농부들의 행태가 의미심장합니다. 35-39절입니다.
35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36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37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38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39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농부들이 주인이 보낸 종을 때리고 돌로 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주인의 것을 빼앗겠다는 말이지요. 눈에 주인이 안보이니 포도원이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그래서 주인은 좀 더 큰 규모로 종들을 보냈지만, 농부들은 작정했나봅니다. 주인이 보낸 종들보다 더 큰 규모로 준비를 해놓고 첫번째와 같이 잡아 때리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주인은 자신의 권위에 대해 마지막으로 시도해봅니다. 바로 자신의 친아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 아들은 장남, 그러니까 주인의 권한을 모두 위임받을 수 있는 상속자였습니다. 주인은 이 아들을 보게 되면 주인의 뜻을 오해하지 않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자신들의 처음 그 욕심을 그대로 그 아들에게 표출합니다. 그 아들을 죽이고, 오히려 더 나아가 주인의 재산을 모두 차지해버리자고 합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비유를 드시는 겁니까? 주인은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리고 주인이 보낸 종들은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보냄을 받은 선지자들을 말하죠. 이스라엘은 그간 계속해서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 하나님의 뜻을 밝히는 자들을 핍박하고 멸시했습니다. 특히 예수님 직전의 선지자 세례요한이 그러했지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선지자를 존재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러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예수님까지 지금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히려 자신들이 주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합니다. 말씀을 제멋대로 왜곡하고 자신들의 왕국 이스라엘을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이 항상 부르고 계심을 우리는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멸시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만약 우리도 이렇게 주인이자 왕이자 우리의 인도자되시는 주님을 멸시할 때 어떤 조치를 받게 됩니까? 예수님은 그 결말에 대해서 40-4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0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41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주인이 와서 농부들을 악한 자라고 판결하고 진멸, 그러니까 그 농부와 그 식솔, 재산 모두를 없앨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는 권한과 자격을 다른 농부들에게 줄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자녀된 권한을 하나님이 다른 이에게 옮기실 것입니다. 그 결과가 결국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죽이고, 이스라엘에게 허락된 복음과 말씀이 이방인에게 옮겨진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복음, 구원을 우리는 감사히 받고 또 그것으로 살아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그러히자 않을 때 어떻게 되겠습니까? 42-46절입니다.
42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4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44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45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46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예수님은 계속해서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시편 118편을 들어서 이것은 예수님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근거를 말씀해주십니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할만큼 하나님의 신비로운 방법으로 사람에게 쓸모없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역사하실 것입니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께 이해가 되지 않음을, 또 자신의 믿음이 없음을 솔직하게 말하고 간구하게 될 것이고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것으로 가득 차 있는 말씀교사들, 종교상류층, 부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 결과 상류층에 있다고 자신의 것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가진 것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재물이나, 말씀이나, 지위든 뭐든 말이죠.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덧없다고 여긴 방법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채운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을 하찮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지에 따라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방법으로 그들은 가루처럼 낱낱히 자신의 인생이 해부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말씀교사들은 자신들을 향한 가르침인 것을 알고 어떻게 합니까? 깨닫습니까? 아닙니다.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의 입을 막고자 합니다. 감옥에 가둬버리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또 사람들의 시야가 두렵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무리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결국 죽을때까지 계속해서 하나님 눈치가 아니라 사람 눈치만 보다가, 재물 눈치만 보다가, 높은 지위의 눈치만 보다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영혼과 마음, 우리의 인생 전부를 책임지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sFSU8rSA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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