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AYAMEMORY
강해설교/마태복음_명예로운 삶

마 15:1-11

by 우루사야 2022. 7. 4.

1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2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4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7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10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오늘도 명예로운 삶으로 인도해주시고 초대해주시는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하나님 아버지를 둔 자녀답게 살아가시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또 다른 논쟁을 받게 되십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 논쟁의 결론에 대해서 예수님이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7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논쟁하러 다가오는 자들에게 "외식하는 자"라고 칭하십니다. 가면을 쓴 자들이란 뜻이지요. 믿음이 있는 척, 신앙이 좋은 척,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 하는 자들입니다. 가면을 쓰고 있음을 지적하시면서 가르침을 이어가십니다. 8절에 보니 "입으로는 공경하지만 본심은 그렇지 않다"고 하십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가르치는 것이지,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은 종이 한장차이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의 근원에 보면 결국 출발지점이 전혀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이 있는 척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도 그것에 속을 수 있습니다. 그 행동의 출발점을 살펴보니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나의 체면과 욕심, 위신' 때문인 것이지요.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우상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행동은 비슷해 보이지만,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입술이 주여주여를 고백한다고 해서 진실된 기도가 아니며, 헌금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며, 누군가를 섬겼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된 것인지 다시 나의 마음의 본심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과 확신에 기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에 기뻐 예배하며 찬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본문이 이어집니다. 10-11절입니다. 

10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11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은 사람이 무언가를 먹어서 몸이 더렵혀지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유대사회에서는 먹지 말아야 할 음식들로 규정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돼지고기였죠. 하나님은 이것을 선악과로 주신 것입니다. 돼지가 우리를 더럽게 써서 거룩하지 않다 이런 해석은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돼지를 먹지 말라고 하셨으니 그들은 먹지 말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우선인 것이지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함에도 인간인지라 범할 수 있지요. 그 약속을 잊거나 욕심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자 하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자에게는 다시 한번 용서와 관계의 기회를 허락해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이유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관계와 절차, 회복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려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자신을 우상숭배하니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으로 자신을 세우려고 합니다. 돼지고기를 먹은 사람에게 권면과 위로로 하나님과 관계를 다시 회복하게끔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정죄하고 판단하고 논쟁을 펼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교만한 자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로 사람이 더러워진다고 하시는 것이죠. 그런 더러운 논쟁을 시작하려고 했던 것이 오늘 본문의 시작부분입니다. 1-2절입니다. 

1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2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이 교만한 자들은 예수님과 논쟁을 펼쳐서 예수님의 천국의 증거 사역을 폄하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서부터 올라왔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논쟁하려고 서울 사람이 부산에 내려간 꼴입니다. 얼마나 악하고 교만한 의도입니까? 그들은 어떤 꼬투리를 잡았습니까?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스라엘 유대사회의 어른격인 말씀교사 랍비들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장로들의 전통이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에 문제점이 등장합니다. 떡을 접할 때 손을 꼭 씻어야 한다는 규정은 제사장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처소 성막 안에 있는 떡올리는 상에 떡을 올릴 때 죄인의 손을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거룩하게 해주신다는 의미로 물대야에 손을 씻게끔 했습니다. 물에 손을 씻는다고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용서하고 계시다는 의미였지요. 그런데 이 규정을 랍비들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음대로 적용시키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동물이나 곡식을 드리는 제사로도 얼마든지 용서의 은혜를 베풀고 계시는데 말이죠. 하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인간의 가르침,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들의 선배의 말씀을 더 우선시하던 말씀교사들의 집단적 우월성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

3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왜 하나님보다 사람의 전통을 더 우선시할 수 있느냐고 말이죠.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고 반박하셨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또 다른 장로의 전통, 말씀교사들의 집단적 우월성에 가득 또 다른 문화 하나를 지적하십니다. 4-6절입니다. 

4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고 말씀과 율법에서 가르치셨다고 예수님은 먼저 소개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교사들 문화에서는 이 말씀을 전면으로 반박하는 문화가 있지 않냐고 그들의 모순을 지적하십니다. 다른 복음서에서 고르반이라고 소개된 장로전통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내 통장 하나를 헌금용 통장으로 지정을 해놓습니다. 그럼 두 번째로 부모님 모시기 위한 재정은 따로 지정을 해놓고 모으는 것이 마땅하겠죠. 그런데 얍삽빠른 사람들은 다 헌금용 통장에 넣어놓습니다. 그리고 그 통장에서 생활비를 빼다가 썼습니다. 장로들이 그것은 또 허용해줬기 때문이죠. 그렇게 부모공경하는 비용을 줄이고 자신의 생활에 더 쓰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드릴 헌금용 통장을 써오는 문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타인을 사랑하라는 계명 중 가장 첫번째 주신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 인간의 이중성이 드러나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면을 쓴 외식하는 자라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이용하고 교회와 성경을 이용하여 나를 합리화시키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어느 정도껏 신앙생활 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과 천국을 맞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내가 우위에 서서 하나님을 조종하는 꼴임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하는 존재임을 잊지 마십시오. 내 생각과 마음의 근원에서부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을 발견하고 깨달음으로 내가 명예롭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것이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이용하고 성경을 이용하고 교회를 이용하는 자들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명예로운 인생 사시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강해설교 > 마태복음_명예로운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15:12-20  (0) 2022.07.05
마15:21-31  (0) 2022.07.05
마 14:22-36  (0) 2022.06.30
마 14:13-21  (0) 2022.06.29
마14:1-12  (0) 2022.06.2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