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 곳을 떠나서
54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55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57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58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오늘도 우리의 인생이 참으로 명예롭다 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가치는 연봉, 재산, 업적으로 판단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왜 만들어졌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말할 수 있는 분을 통해서만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자라고 소개하십니다. 그래서 그간 천국의 증거들을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안식일 논쟁과 비유가르침을 주셨고, 우리가 얼마나 명예로운 삶을 예수님과 함께 살아아고 있는지 알려주셨죠.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이 명예로운 삶이 아닌 기존의 질서대로 살아가고자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본문 53-54절입니다.
53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 곳을 떠나서54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고향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회당에 들어가 성경에서 나타나는 천국의 증거들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더니 고향사람들이 놀랍니다. 어떻게 예수가 이런 지혜와 능력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고향사람들은 예수가 유년시절을 자신들과 함께 보내었고, 그 집의 식구와 숟가락 갯수까지 알 정도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어떤 생활을 하였는지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런 예수가 회당에서 놀라운 말씀의 해석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고향사람들의 심정을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54절에 보니까 이 사람들이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라고 말합니다. 즉 갈릴리 이 촌구석, 예루살렘 종교의 중심지에서 가장 먼 북쪽땅끝 마을에 있으면서 이런 종교적 해석능력을 어디서 얻었느냐,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그들은 중요한 것 한가지를 놓치고 있습니다. 지금 그들이 보아야 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지, 예수의 유년시절이 아니었던 겁니다. 지금 드러난 사실은 천국이 다가오고 있고, 하나님의 역사가 예수를 통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해석에 예수를 집어넣어 예수를 재해석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55-56절을 볼까요? "55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예수는 목수의 아들이었지 결코 교육받은 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의 가정의 구성원들을 보면 결코 그 가정에서 이런 고급교육을 받은 자가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라고 궁금해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궁금하지요. 신기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예수 한 사람이 변했는지 너무나도 신비합니다. 그럼 그 근원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예수가 말하고 있는 천국의 증거입니다. 그 증거를 받아들이고 믿음으로써, 그들은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약 내내 약속되어진 메시야임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다른 자의 이야기가 아님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해석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않으려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바울은 "잠자는 자"라고 표현하며, 깨어있으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세상의 저항을 얻을 때 말할 것을 "성령 하나님"께서 알려주실 것이라고 미리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본문에 있는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처럼 장차 오실 예수님을 배척하지 않으려면, 지금 내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 인도해주시는 인생을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은 신비로운 환상이나 환청으로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심령에 용기, 지혜, 사랑, 확신으로 일하십니다. 성령의 열매들을 보십시오. 다들 내면의 것들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게 성령 하나님과 교제할 때 세상이 주는 절망과 무기력, 허망과 차원이 다른 놀라운 생명력있는 것들로 우리에게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하지만 본문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은 귀를 닫고 맙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57-58절입니다.
57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58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예수님은 지금 고향땅 사람만을 비판하지 않으십니다. 그간 이스라엘의 행태를 꼬집으십니다. 하나님께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이 지금 예수님과 같은 대접을 받아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도 고향땅에서 "자신의 생각과 경험"으로 가득찬 사람들로 말미암아 배척을 받았다고 말이죠. 그들도 결국 고향땅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들을 결국 전하지 못했듯이, 예수님도 자신의 고향땅에서 결국 나오고 마십니다. 마태는 그런 점에서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고 합니다. 거기서 아무리 기적과 치유사역을 보여줘도 그들도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처럼 폄하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기대하고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나의 생각과 경험, 주장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배척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 천국의 증거, 성령님과의 교제로 우리가 깨어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우리는 그 분을 환영하며 그 분을 뵈오며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과 함께 동행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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