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에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이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니라 그 때에 선지자예레미야가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2바룩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3네가 일찍이 말하기를 화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
4너는 그에게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5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늘은 예레미야서 구조를 먼저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레미야서는 총 52장으로 이뤄졌는데 우리가 다음주부터 살펴볼 46장부터는 유다가 아닌 다른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메시지를 다루게 됩니다. 그러니까 1장부터 45장까지는 유다에 대해서 다뤘다면, 46장부터는 유다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을 다루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함께 살펴볼 45장은 유다에 대한 메시지의 결론부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예레미야서를 보면 위로의 메시지가 드러나게 나타난 부분보다는 심판과 재난에 대한 메시지가 많죠. 그래서 사실 예언서를 읽기를 기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심판 안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여지까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예레미야의 제자 바룩선지자의 마음도 심판과 재난에 대해서 가득한 가운데 숨겨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야 예언서를 읽느라 심판과 재난을 불편해하지만, 바룩은 그 시대를 살았으니 그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에 심판일지라도 그 속에서 주님의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죠. 본문 1-3절부터 살펴봅니다.
1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에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이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니라 그 때에 선지자예레미야가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2바룩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셨지만, 바룩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셨습니다. 주인공이 예레미야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님에게 우리 모두는 주인공입니다. 오늘 메시지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바룩에게 메시지를 주라고 하십니다. 1절에서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여호야김 왕의 때"입니다. 항상 그랬지만, 여호야김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메시지는 전해졌지만 여호야김 왕과 백성들은 듣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전한 메시지들을 바룩 선지자가 적도록 하셨습니다.
절망의 시대, 멸망의 세계를 산다는 것, 다시 말해 무얼해도 망해가는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허무와 절망, 무기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바룩은 매번 주어지는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를 기록하면서 심령이 무기력하고 절망적이었을 겁니다. 매번 들려오는 심판의 메시지는 그에게 "망해가는데 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들게끔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3절과 같은 심정이었음을 하나님은 밝히십니다.
3네가 일찍이 말하기를 화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
바룩은 자신의 나라와 민족이 망해가는 것을 믿어야 하는 이 현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고 고통스럽고 슬펐습니다. 믿음이 없었다면 믿지 않고 사역만 했겠지만, 바룩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 메시지와 예언이 성취될 것이라 확고하게 신뢰했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곧 탄식과 슬픔,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평안한 마음을 가지길 소망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은 그것을 밝히 드러내시며 바룩이 자기 스스로의 마음을 직시 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마음입니다. 잠언 4:23에 보면 "23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시며 설계라고 할까요? 계획하실 때 마음에서 동기부여, 삶의 원동력 그런 것을 뜻하는 생명의 우물을 두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만히 두면 삶의 활기가 넘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우물에 뚜껑이 덮혀 생명이 밖으로, 생각으로, 지성으로, 말과 행동으로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죄"라는 뚜껑입니다. 나의 죄악스런 생각이 우물물을 더럽히고, 나의 고집이 그 우물 뚜껑을 덮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근원으로 살지 못하는 죄인이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생명력"이 있어야 사는 존재이기에, 다른 우물을 파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닌 마음에 다른 동기부여, 다른 생명력을 찾습니다. 명예를 향하여 거짓말도 서슴치 않게 되고, 성공을 위하여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기도 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중독될 정도로 의지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마음지키기"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바룩이 했던 말, 하나님이 나에게 고통과 슬픔을 더하셨다는 말을 다시 잘 해석해보자는 의도로 바룩에게 메시지를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5절 상반절에서 바룩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5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하나님은 여전히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더 확고하게 하나님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시리라는 메시지를 굳이 바룩에게 전하라고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바룩에게 던지셨던 의미심장한 한 메시지, 바로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라는 지적이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바룩에게 슬픔과 고통을 주신 것이 아니라, 바룩이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는 "큰일을 찾는 것"이 문제였던 겁니다.
사람이 기대가 크면 실망하게 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 가져도 되는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가지지도 못할 것을 기대하고 고대하며 하나님 탓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의 분수와 분량,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를 아는 것은 어찌보면 하나님이 나를 작게 만드셨구나라고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주셨구나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바룩을 심판의 시대에 사역하게 하셨습니다. 이 시대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룩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 그릇, 은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보다 더 다른 것을 원했습니다. "너를 위한 큰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것을 바랬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호하게 "그것을 찾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대신에 다른 것을 "보라"고 하십니다.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느라 힘든 이에게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바라보며 살라고 하십니다. 현실을 도피하지 말고, 너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피하지 말고 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
그래서 하나님은 바룩에게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네가 모시는 신이 어떤 신인지를, 그래서 네가 어떤 인생의 방향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말이죠.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모든 육체가 재난을 당할 것을 전하고 또 바라보아야 하는 선지자"였습니다. 이 십자가를 바룩은 져야 했습니다. 본이이 원하는 큰일을 추구하며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쳐다보지도 말라고 하셨던 것이지요. 그는 심판과 재난을 바라보며 그것을 전하는, 그러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인생과 목숨을 바치면 "하나님은 찾게 해줄 것이다"고 하신 겁니다. 5절 하반절입니다.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노략물 주듯, 이 표현은 강권적인 힘을 가지고 무언가를 획득하는 자의 모습을 표현합니다. 모든 육체에게 재난이 임해 목숨을 잃고 망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룩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서 강권적인 보호 아래서 목숨을 보장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인생은 이렇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위로의 말을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온천하를 얻어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을 이렇게 지켜내십니다. 우리가 아직 살펴보지 않은 4절을 보며 마무리하겠습니다.
4너는 그에게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세운 것을 헐고 심은 것을 뽑고" 이 표현은 예레미야서의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계획하시고 만드시며 이뤄가시며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룩에게 있어서 진정한 평안과 안락은 자신의 기준에서의 큰일을 통해서 이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주는 인간이 만든 안락이기에 금방 망하고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운 것을 헐고 심은 것을 뽑는, 재난과 심판의 시대 속에서 "노략물 주듯 생명"을 지켜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바룩이 바라보아야 할 큰 일은 바로 하나님의 큰일이었던 것이죠. 그 안에 자신의 화평과 평안이 있었던 겁니다.
지금 우리는 2년 여간의 코로나시대를 살아냈습니다. 이 시간 속에서 누군가는 절망했고 또 누군가는 화평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교회들의 아픔 속에서 절망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극적인 재산의 불어남으로 화평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신앙의 어려움으로 혼란했던 시간이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공동체의 부재 속에 힘든 2년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상황과 환경이 아니라 "내 마음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마음을 보시고 심령을 살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우리 손으로 만들어내는 큰 일이 아니라, 지금 세계를 이끌어가시는 큰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끔 하십니다. 그것이 절망의 시대일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지켜내십니다. 오늘 하루도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살아냅시다. 하나님의 큰 일 안에서 살아냅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아냅시다. 그렇게 승리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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