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빌레몬서 마지막 본문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많은 영적인 원리들을 제시하며 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자유케 하여 바울에게 돌려보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빌레몬이 자의로 할 수 있도록 바울이 오네시모를 보내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오네시모는 이 영적인 원리들을 믿고 확신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금 빌레몬에게 돌아갔던 것이죠. 그렇게 이들의 관계는 놀라운 결과로 마쳐지어 2000년 후인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15절부터 보시죠.
15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16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에베소서에서 우리는 바울이 신자가 가지는 성품이나 윤리적 기준까지도 구속사적 관점으로 제시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상황까지도 구원을 위해서라고 해석하여 쇠사슬에 매이고 갇힌 자가 되었음을 빌레몬서 서두에서도 밝혔죠. 15절에서 바울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을 떠나게 된 것도 오네시모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일어난 일이었다고 해석을 합니다. 영원히 두게, 즉 육신의 관계에서는 헤어지거나 또 누군가 죽음으로써 그 관계가 끝나지만, 예수의 한 몸된 관계는 저 천국에서 영원히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때문에 이 문제의 해결도 구속사적으로 해결할 것을 권면합니다. 다시 돌아온 오네시모를 이제 종이 아니라 "사랑받는 형제"로 두어야 한다고 말이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만약 빌레몬이 이런 바울의 권면을 받아들여 오네시모를 벌하지 않고 자유인으로 둔다면, 수 많은 신자가정에 있는 종들이 무분별하게 탈출하거나 자유인이 되게끔 한다면, 오히려 사회적 혼동을 야기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장치가 반드시 필수적인 것임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빌레몬의 용서는 아무런 가치과 대속없이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희생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네, 오네시모는 자유해졌다고 해서 방자해질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희생때문에 이뤄진 것을 알기 때문에 용서받은 이후에 더 낮아지고 섬길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죄의 용서라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 죄를 더 짓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냐고 반문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는 그 거저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용서해주신 것으로 말미암아 더 낮아질 수 밖에 없지, 어떻게 거저 용서해주실 것을 믿으며 더 죄를 방자하게 짓고자 하는 양심이 없는 행동을 하겠냐는 것이죠. 네, 오네시모의 용서에는 예수의 사랑과 빌레몬의 용서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7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18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바울은 자신이 이 문제 해결에 있어서 드는 비용을 대겠다고 말합니다. 사실 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죠. 빌레몬에게 "네가 받은 은혜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라고 19절에서 "19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고 말하는 것이죠. 네, 오네시모는 지금 예수, 바울, 빌레몬에게 빚진 자가 되러 가는 길입니다. 바울은 이 영적질서와 원리를 오네시모에게 설명했겠죠. 이 편지의 내용을 그렇게 해설해주었을 겁니다. 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밖에 없는지, 그래서 오네시모가 이 편지를 들고 가도 되는지, 그리고 마침내 빌레몬의 용서 이후에 어떤 자세로 생활해야 하는지까지 말이죠.
우리가 잘 아는 밀양이라는 영화. 범죄자가 옥중에서 신앙을 가져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며 피해자 유족들 앞에서 뻔뻔한 모습을 보이는 것. 그것은 참된 예수의 용서와 한몸된 신앙을 가지지 못한 모습입니다. 결코 예수의 사랑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로부터 시작된 용서와 사랑을 선대의 선배들에게 이어받아 지금 우리에게까지 받았음을, 지금 내가 받는 은혜가 나 혼자가 아니라 내 옆에 신자들로부터 이어 받고 있음을, 그렇게 한몸으로써 받은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 홀로 신앙의 잘남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끝맺는 구절을 읽으며 마치겠습니다.
20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21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22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23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24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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