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빌립보서 2장 5절
제목 : 마음품기
1. 서론
1) 예화
올림픽이 한창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최고의 성적을 올린 양궁협회장이자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 연설이 화두입니다. “어느 분야든 최고라는 자리까지 올라가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는 것을 잘 압니다. 중요한 건 어떠한 상황에서도 품격과 여유를 잃지 않는 진정한 1인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국가의 품격을 높이고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안겨드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스포츠의 가치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신학계 원로 박영선 목사님 은퇴연설이 기억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항공모함입니다. 풍성한 신학적 유산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함선이지요. 가끔 함선이 답답하다고 전투기들이 빠져나갈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그 전투기를 향해 대포를 쏠 없습니다. 기름이 떨어지면 다시 돌아옵니다. 우리는 그 때를 기다릴 줄 알고 또 품어줄 수 있는 품격과 여유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연설들은 하나같이 "누리는 자가 가지는 품격과 여유"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2) 주제
체육계에서, 산업계에서, 신학계에서도 명예와 여유를 말할 수 있다면 우리 신앙세계에서는 어떨까요? 예수님이 12명의 제자들에게 권한을 위임해주시고 또 능력을 주신 후에 2사람씩 전도여행을 보내시면서 당부하신 한 말씀이 있습니다. "14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마10) 이 표현은 "재판장이신 하나님, 나는 이 마을에 할 도리를 다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심판의 책임은 이들 당사자들에게 있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복음은 무례하게도 또 사정해서 전하는 것도 아니죠. 제자로써 가져야 할 특정한 여유와 품격이 있다는 겁니다. 과연 이 품격은 어떤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3)본론잇기
그 자세에 대해서 또 그 자세를 가질 수 있는 근거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해주는 본문이 우리가 함께 읽은 빌립보서입니다. 특히 가장 유명한 구절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이 있고, 또 유명한 구절로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로 시작하는 시가 있습니다. 예수의 마음과 능력이 있기 때문에 신발을 떨고 쿨하게 나올 수 있는 품격도 있고, 고통을 받으면서도 신앙생활을 묵묵히 유지할 수 있는 여유도 갖추게 되는 것이겠죠.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이 여유와 품격을 지니고 있는지, 또 이것을 어떻게 강화시키며 적용해 살아갈 수 있는지 나누는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 성자의 위치
이 시는 많은 신학자들이 바울이 쓴 많은 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함축적으로 많은 교리를 품고 있는 것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유명한 시입니다. 특히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시작하면서 4가지의 예수의 위치을 소개해줍니다. 각 위치에서 예수가 어떤 품격과 여유를 보여주었는지 확인해보시죠.
첫번째는 6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동등됨이라는 위치입니다. 성자 하나님은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셨어요. 근본, 본체. 맥락상 이 단어는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과 같은 위치, 동급이었다는 걸 말해줍니다. 그 위치에서 성자 하나님이 어떤 태도를 가지십니까?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쉬운성경은 "하나님과 똑같이 높은 분이셨지만, 결코 높은 자리에 있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did not consider equality, niv) 성자하나님은 인간이 되셨을 때뿐만 아니라 신의 위치에 계실 때에도 여전히 "섬김과 겸손"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죠. 이것이 첫번째 예수의 마음입니다.
그럼 이것은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됩니까? 우리가 읽은 본문 서두에 바울은 이렇게 빌립보교회에게 먼저 권면했습니다. 3절 하반절을 보면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성자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낮은 자가 되고자 하셨던 것처럼 말이죠. 결코 여러분의 자존감과 인격을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자가 성부를 대하듯이, 섬기고자 낮은 자리에 스스로 앉을 줄 아는 태도와 그 위치가 예수의 마음입니다.
두번째 예수의 위치는 어디입니까? 7절을 보면 예수는 신의 위치에서 동등됨을 버리시고 한발 더 나아가 "자기를 비워"내십니다. 자기를 비운다는 표현은 명확하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불교계의 가장 유명한 스님으로 법정스님이 계시죠. 특히 그 분의 무소유가 가장 유명할 겁니다. 법정스님이 말하는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말자는 미니멀리스트의 주장이 아닙니다. 가진 모든 것이 누구의 것도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모든 만물, 나의 재물, 나라는 사람까지도 필요에 의해 쓰여져야 할 대상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언어로 표현해보자면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받는 나의 시간, 재정, 에너지가 되겠죠.
바울이 먼저 빌립보교회에게 권면하기를 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다툼과 허영이 어디서 나옵니까? 타인보다 내가 더 우선시된다는 의식과 더 높다는 인식에서 나타나는 태도죠. 영어성경을 보니 selfish ambition 이기적인 야망, vain conceit 근거없는 자부심. 모두 타존재를 이용해서 나를 높이려하거나, 스스로 높다고 인식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나는 나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또 이웃을 위해 사용될 인생이라는 마음을 갖는 것이 자기를 비우는 것, 두번째 위치에서의 예수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입니다. 성자는 동등됨을 버리고 자기를 비운 후, 7절에서 "종의 형체"를 가지기로 하십니다. 성부 하나님의 종이 되기로 하셨다는 것이죠. 성부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 말이죠. 이제 태도에서 행동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위치가 설정됩니다. "사람과 같이 된 것"이었습니다. 8절을 보시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성자는 그냥 종이 아니라 성부에게 충성된 종이 되셨던 겁니다.
4절에 보니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는 것에 대해 권면합니다. 여기서 돌보는 행위의 정도는 얼만큼입니까? 성부의 종이 되어 신이 더 낮은 사람이 되듯, 우리가 누군가의 일을 돌본다는 것은 그의 아래에서 그의 일을 돌보는 것을 의미하죠. 때론 그런 이들을 향해 세상은 호구잡혔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는 마지막만찬때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종이 하는 일 중에서도 가장 더럽고 치욕스러운 일을 감당하시며 가장 호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시는데, 결정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14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13) 높아질 수록 더욱 섬겨라, 호구가 되어서 하나님이 높이실 때 더 호구가 되어주라는 말씀이죠.
2) 복으로 변환되는 섬김
여기까지 우리는 3가지의 성자가 가져온 위치를 통해 예수의 마음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동등됨을 버리고, 자기를 비워, 종이 되셨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렇게 낮아진 결과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완벽한 해피엔딩이에요. 방금 언급드린 세족식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17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13) 섬겼을 때 섬김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복이 주어질 것"이라는 약속으로 주어집니다.
이 시의 결말도 마찬가지입니다.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위치에 관한 단어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9절에 높여, 무릎을 꿇게, 주라 시인하다 등이 있네요. 모두 예수가 높아지는 것에 관한 표현들입니다. 네, 이 시의 결론은 낮아질 때 하나님은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언제부터인지 확인하세요!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로를 섬기고 서로에게 순종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자녀를 낳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가정과 자녀는 서로 섬기고 서로를 높여야 합니다. 그 때 복이 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자, 땅에 있는 자, 땅 아래에 있는 자 모두가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가장 높은 권세로 높아지는 예수를 의미합니다. 가장 복된 위치로 나아가는 예수였습니다.
네,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운영하시는 원리입니다. 우리가 왜 다른 이를 용서하고 섬기고 희생해야하는지가 드러납니다. 구원은 우리 존재의 가장 궁극의 상태입니다. 가장 높아지는 상태를 말해요. 낮아진 자만이 높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시에서 특히 예수를 통해 드러납니다. 예수가 인간이 되기 전 성자 하나님때부터 그러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는 인류의 대표자가 되어서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 보좌 우편까지 이르도록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우리가 낮아지고 섬겨야 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구원받은 자에게 나타나야 할 당연한 품격과 여유입니다.
3) 어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계십니까? 품격과 무례사이
성경에서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고 했을 때에는 지식이 아니라 "체득"을 말합니다. 저는 이 영적원리를 믿습니다. 당장 돈이 안됩니다. 그래서 경험하지 못한 분들은 그걸 왜 해야 하느냐, 그렇게까지 져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저라고 왜 속이 안쓰리고, 당장 입에 불평이 안나오겠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울며 씨를 뿌려야 열매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원리대로 살려고 몸부림 치는 겁니다. 그래야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한 동기 목사님의 교회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0명이 안되는 작은교회지만 40년간 이어져 온 교회입니다. 그곳으로 부임해 갔습니다. 갈갈이 찢겨져 나가는 상황에서 사임을 하고 나온 뒤 정신과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 "거기에는 평생을 신앙생활한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신앙이 과연 무엇일까 의문점이 든다. 나에게 하는 말과 행동, 결정들이 얼마나 무례했는지, 그들의 신앙을 의심하게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네, 신앙도 실력이 있어야 품격있게 나타나는 법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사람은 무례해집니다.
신앙에 있어서 실력은 구원의 확신입니다. 여러분에게 구원의 확신은 무엇입니까? 내가 이것을 내어주어도, 저것을 희생해서 가지지 못해도, 그것을 포기하여 세상으로부터 평가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따라 섬기고 희생하고 낮아지는 인생만 살아도 하나님께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부르실 것이라고 믿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믿음이 있어야 천원 한장이 포기가 되고, 나의 자존심을 내려놓게 되며, 힘들어 죽겠어도 다시 꺼내서 무언가를 줄 수 있게 됩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오른뺨 후에 왼뺨을, 겉옷 다음에 속옷까지, 오리를 너머 십리까지 내어줄 수 있는 것이죠. 여유와 품격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기 전에는 이 잔을 피하고 싶다고 말했고, 십자가에 오른 후에도 아버지께로부터 떨어져나간다는 그 사실에 "아버지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힘들 정도라면 재판장에서 항변할 수도 있을텐데 예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잠잠히 이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도 힘들고 죽겠습니다. 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의 안에서 요동치는 믿음은 그로 하여금 왼뺨도 돌려대게 했고, 속옷까지 내어주게 되었으며, 십리를 너머 죽기까지 인류와 동행하는 길을 걷게끔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십시오. 예수의 마음으로 여유와 품격을 가지십시오.
3. 결론
여유하면 떠올려지는 영화가 "인타임"입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 주연인데, 시간이 화폐인 설정이에요. 하층민인 주인공이 어쩌다 상류층 마을에 가 부자행세를 하지만 곧 탄로가 납니다. 시간이 많은 부자들은 뛰지도 않고 시계도 보지 않지만, 주인공은 자꾸 시계를 보고 뛰어다니거든요. 확고한 근거가 없으면 사람은 티가 나기 마련입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개척시키고 후에 로마로 잡혀 들어가죠. 그 감옥에서 쓴 편지가 빌립보서입니다. 그런데 그 빌립보라는 도시는 로마군 장성들이 퇴역 후 노후를 보내는 잘사는 도시로써, 로마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각별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니 로마황제의 신성화 또한 강한 도시였죠. 그곳에서 유일신 하나님을 전하는 바울과 그의 추종자 기독교인은 학대받아 마땅한 부류였습니다. 그런 빌립보교회에게 바울이 쓴 빌립보서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무엇입니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확고한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품격과 여유가 느껴지십니까?
이번 한 주.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사시고자 하십니까? 시간에 쫓겨, 돈에 쫓겨, 일에 쫓겨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내게 주신 예수가 가진 복음의 위치, 그 위치를 따르는 확고한 마음으로 여유와 품격을 가지고 사시겠습니까? 예수는 각각의 위치를 살아내심으로써 우리가 따라갈 수 있는 길, 복음의 길, 십자가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길을 따라 하나님보좌 우편으로 나아갈 그 날을 고대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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