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1) 예화
하버드대학원 에이미 커디 교수의 연구가 있었습니다. 한 그룹은 2분동안 의기양양한 고자세를 유지하게 했고 또 다른 그룹은 의기소침한 저자세를 취하게 했습니다. 그리고서 신체와 심리적 변화를 관찰했는데 의미있는 두 가지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침을 분석해보니 자신감 호르몬이라 불리우는 테스호스테론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고자세를 취한 사람은 높게, 저자세는 낮게 나타났죠. 두번째 반응은 내면반응인데 흥미롭습니다. 두 그룹에게 모두 도박을 시켜봤는데 고자세를 취한 그룹은 모험적베팅을 했고, 저자세를 취한 쪽은 회피적성향을 보였습니다. 어떤 태도와 자세인지에 따라 신체는 물론이거니와 행동까지도 결정한다는 연구결과였습니다. 네, 제일 중요한건 "마음먹기"입니다. 어떤 마음을 먹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면접을 갈 땐 좀 더 의기양양한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나아가야 하겠고, 내가 겸손을 보여야할 때라고 생각되면 마음과 자세부터 고쳐잡아야 할 것입니다. 내 의지가 먹은 마음이 생각, 호르몬, 신체의 행동방식까지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말이죠.
2) 주제
하나님도 마음의 의지를 중요하게 보십니다. 아담의 죄를 지적하실 때 누구의 의지인지에 대해 가장 먼저 물으셨습니다.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창3) 하나님의 관심사는 "너 자신의 의지로 먹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주목하고 계셨던 겁니다. 그래서 "너의 벗었음" 너가 느끼는 수치감은 알려준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마음에 대해서 물으셨던 겁니다. 자신이 죄를 지었으니 자신이 양심의 수치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죄의 원리를 깨닫게 하신 것이죠. 그리고나서야 책임소재를 따지셨죠.
네, 우리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마음먹은 의지"입니다. 하나님께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나의 의지"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지하는게 매우 중요합니다. 타인을 탓하고 남을 탓하고 환경을 탓해서 개선될 것은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의 단을 거두리로다" 요한계시록에서는 "12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고 합니다. 내 마음먹기는 어떤가요.
3) 본문잇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스라엘에게 이미 바벨론에 멸망당해 심판받을 것이 정해졌는데, 동시에 하나님께서 위로의 말씀도 함께 주시는 내용입니다. 심판의 과정을 잘 겪고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말이죠. 특히 마음에 의지를 가지고 이 시간을 잘 살아내야 할 것을 당부하고 계신 것입니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어떤 마음을 먹으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 말씀이 어려운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2. 본론
1) 이스라엘을 부르는 호칭
본문의 배경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힐 예정인 이스라엘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무어라 부르십니까? 8절에 보니 "나의 종, 나의 벗"이라고 하시죠. 종이면서 친구라, 이해가 좀처럼 되지 않는 관계입니다.
여러분에게 좋은 직장은 어떤 곳입니까? 최저시급만 주고 복리후생, 직원복지, 명절과 휴가 등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는 직장이라면 어떨 것 같으세요? 노예죠. 네, 지금 하나님이 부르시는 종은 이런 노예가 아닙니다. 이와 반대되는 직장은 어떨까요? 급여도 잘 주는 것은 기본이고, 탕비실에는 간식들이 항상 채워져있고, 명절보너스와 휴가보너스를 두둑히 주니 가족들에게 면도 세워집니다. 얼마 전에는 한 기업이 롯데월드를 통으로 하루를 빌려 임직원을 초대하는 일도 있었죠. 네, 이렇게 고용주가 고용인의 개인적인 생활까지 챙겨주는 것이 종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벗이라고 부르고 계시죠. 고용주와 고용인간에 의리가 생기기까지 합니다. 율법에는 종이 자유해질 수 있는 기간을 설정했습니다. 하지만 주인에게 더 머물고자 했을 때에는 귀를 뚫어 종신직을 서약할 수 있게 했습니다. 얼마나 주인이 잘 해주었으면 이럴까요. 지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렇게 여기고 계셨던 겁니다. 종에서 벗이 되어 동반자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본문을 보면 위기상황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0절을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두려워질 일과 놀랄 일이 앞으로 있을 것, 즉 바벨론 포로생활을 앞두고 있음을 미리 이야기하고 계신 겁니다. 11절에 보니 이스라엘을 향해서 분노하던 이들도 있고, 수치를 주며 욕하는 이민족이 있을 것이며, 이스라엘과 다투는 이들도 생길 겁니다. 그 때 이스라엘은 참으로 위축되어 있을 수 밖에 없겠죠.
실재로 이스라엘이 바벨론포로로 이주해와서 당한 일들이 뭡니까?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용광로같은 풀무불과 사자굴에 들어갈 뻔한 다니엘서, 정치적항복을 하지 않았다고 유대민족 말살정책을 당한 이야기가 적힌 에스더서, 고향으로 돌아와 성벽과 성전을 다시 세울 때에도 방해받는 느헤미야서와 에스라서. 얼마나 불쌍한지 오죽하면 하나님이 14절에 무어라고 부르십니까? "버러지" 그러니까 지렁이나 벌레같은 작디 작은 존재라고 부르시죠.
그런데 여러분이 조금만 신경써서 들으셨다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실 겁니다. 지금 이게 미래에 있을 예언이라는 거에요. 고난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힘내라 인내해라"라고 하시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상숭배로 가득해서 도저히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나마 의로운 왕 히스기야조차도 바벨론과 동맹을 맺어보려고 자신의 무기고를 자랑하다가 결국은 바벨론 포로에 대한 예언을 듣게 되지요. 심판과 고난이 예정되고야 말았어요. 무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아픈 아버지의 마음으로 오늘 본문과 같이 위로하시는 겁니다. "내 새끼, 내 강아지, 내 이스라엘아. 얼마나 힘들꼬, 아무런 이유없이 해코지 당할것이며, 비방과 수치를 당하고, 너의 앞길을 막을 자들이 나타날 것이야. 그래도 두려워하지말거라. 그래도 무서워하지 말렴. 내가 너의 하나님이니 너를 참으로 돕고 오른손으로 붙을 것이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으라는 애닳은 부모의 심정처럼 들립니다.
2) 하나님이 시작하신 바벨론, 애초에 부르셨던 하나님
그럼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께 물어볼 수 있을겁니다. "하나님, 애초에 이렇게 안하시면 되는거 아닙니까? 그냥 포로로 보내지 마시고 더 강하게 혼내시면 되는거 아닙니까? 왜 아파하시면서까지 이렇게 하시는 겁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심판, 고난, 훈련이 이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러지에서 종으로, 또 벗으로 부르시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15절을 보시죠. "15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보니 이스라엘을 타작기로 삼겠다 하십니다. 쌀 한두가마니 정도를 타작하는 것이 아니라 산을 타작해서 가장 작은 알곡인 겨자씨만하게 탈곡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타작기가 뭡니까? 이삭을 낫으로 추수한 것을 날이 여러개가 있는 도구 틈새로 끼워서 이삭과 낱알을 분리시켜 이삭은 버리고 알곡들만 모으는 겁니다. 손으로 알곡을 하나하나 따기 힘드니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계획은 작디 작았던 이스라엘을 세상을 골라내는 중심국가로 세워서, 알곡 나라와 버릴 이삭 나라를 구분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겠다 하신 겁니다. 밭에서 이삭잎이나 먹던 버러지같은 존재가 알곡을 걸러내고 판단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 단순한 노예가 아니라 주인의 권한을 받아서 알곡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대리인이 되는 것입니다. 네, 이스라엘이 이렇게 고통당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대리인"이 되기 위함이었던 겁니다.
9절을 보시죠. "9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그렇게 사용해달라고 먼저 다가왔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먼저 시작한 관계입니까? 네, 하나님입니다. 창조하신 것도 하나님이고, 키우는 것도 하나님이시며, 결론을 맺으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대상, 믿는 하나님은 버러지처럼 능력없는 나를 타작기로 만들겠다고 작정하신 분이십니다. 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 계획을 애초에 처음부터 시작하신 분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아니면 육체적인 죽음이 다하는 그 날까지 이 믿음을 가지고 마음을 굳세게 먹고 살아가야 합니다. 여간 어려운일이 아니겠죠. 믿음이 있는 자로써 명예롭고 또 담대하게 복음을 선보이며 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건 내 능력으로 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어떤 일을 시작하시고 또 어떻게 끝내실 것인지에 대해 알고 있고 믿고 있어야 가능한 삶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내가 버틸 수 있고, 견딜 수 있고, 이 신앙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3) 움직여야 합니다.
제 아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차승원씨입니다. 남자가 봐도 참 멋있는 사람입니다. 유재석씨와 인터뷰한 내용이 마음에 들어 간혹 찾아보기도 합니다. 차승원씨가 근묵자흑이라는 사자성어를 쓰면서 검은데 가면 내가 까맣게 되듯이, 발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발전하는 것이지, 내가 하던 일 쉬운 일만 하면 결코 발전이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참 공감이 됩니다.
여러분. 근묵자흑.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이 하나님께 가까이 간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방향, 하나님의 일하심과 가까이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어 하나님의 도구 타작기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빛이고 소금입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된다고 하죠.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결코 우리의 신앙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세상과 가까워지면 난 어느샌가 세상이 됩니다. 나의 머리 꼭대기에 세상이 올라가 있어요. 내 목에 목줄을 채워 쥐고 있어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해야 합니다. 내가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주례를 하고 왔습니다. 기독교에서 부부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이 바울의 부부관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5:25) 부부란 자신을 주심같이, 죽기까지임을 설명했죠. 식이 끝나고 식사를 하는데 동행한 아내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뭐가 자꾸 죽어"라며 중얼댔다고 말이죠. 이해할 수가 없는 거죠. 부부사이가 뭐 그리 대수냐는 거죠.
이번에 교회학교에서 몇가지 지역아동을 위한 반을 개설했죠. 밴드부, 무용반, 축구반이 있습니다. 2주 정도 남았는데 우리 친구들이 그래도 교회이름을 달고 뛰는데, 응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학부모님들과 소통이 많아졌는데 몇몇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왜 이렇게까지 하시나요?" 어떤 분은 고마워서 말하기도 했고, 어떤 분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시기도 하시더라구요. 네, 저는 이 아이들에게 예배에 나오라고 한마디를 한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셨듯이 섬기고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분들은 이해가 안가는거죠.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듯 목숨바쳐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세상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실만큼 희생하시듯이 세상을 섬기는 것을 세상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십자가 사랑을 닮아 사랑하는 것은 미련해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음먹으셨습니다. 의지를 가지고 성부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신의 위치를 버리고 인간이 되어 우리 버러지들의 대표자가 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세상이 이해 못해도 날 만나주시고 사랑해주시는 예수님이 움직이셨었고, 성부 하나님이 지금도 움직이고 계시다면,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서 교통하고 계시다면 우리도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조금씩 우리교회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십니까. 네.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니 하나님과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향으로, 예수님의 방식으로, 성령님의 방법으로 마음먹고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의 의지를 가지고 이번 한주도 주도적으로 살아가십시오. 세상이 타작기가 되어 나를 탈탈 털어버리는 인생이 아니라. 나를 붙드시고 도우시는 하나님, 나에게 시험과 훈련을 주시는 하나님, 그래서 나를 요긴하게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사용하실 것을 믿으며 마음먹고 한주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주제설교 >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을 돌이켜_출애굽기 13장 (5) | 2024.10.13 |
---|---|
마음품기 / 예수를 따라_빌2 (1) | 2024.08.10 |
우주를 다스리는 자 (0) | 2024.04.14 |
충만이라는 영성 (1) | 2023.10.07 |
눅 17:11-19 after 추수감사절 (0) | 2021.1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