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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문답

큐티나눔에 관하여(1)

by 우루사야 2021. 5. 27.

 

교회의 교제를 위해 고대는 식탁(성찬)이 존재했다면, 지금은 소그룹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 두가지의 공통점은 "삶을 공유하는 코이노니아"라는 것. 삶을 공유함으로써 공교회를 이루고, 이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없는 상태에서 성례만 존재할 때 반응없는 시체와 같이 느껴지거나 메마른 교조주의 교회처럼 비춰진다. 

 

현재 사역하는 교회에서 그래서 "교제"에 대한 욕구에 따라 주일예배만 드리고 흩어지는 것에 대한 대책으로 오후예배를 큐티나눔으로 변경해보고자 하고 있다. 그래서 이를 준비하는 가운데 있는데,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과연 성경은 성례와 교제의 밸런스를 어떻게 가지고 있는가? 건강한 교회는 교제를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가? 이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1. 개인적 삶을 나누는 것의 필요성과 한계

2. 질서있는 교회조직

3. 깊은 나눔과 더불어 공교회로서의 모습

4. 평일로 나아가는 신자에게 있어서 교제의 존재의 이유

 

나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먼저 부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리해보고자 했다. 개인이 하나님과 교제 속에서 누리는 삶의 풍요를 부흥이라 정리해본다면, 그것은 말씀으로 삶이 중심잡히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 개인이 자신의 주관적인 환경에서 객관적인 하나님의 역사(계시, 구속, 성령의 내재)의 선언으로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1번에 답하는데 있어서 삶 나눔이라함은 먼저 자신의 삶을 목도하는 시간이 필요하겠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말씀에서 찾아 자신의 삶 속에서 다시 한번 찾아내야 할 것이다. 이것에 있어서 말씀 중심으로 이뤄지는 큐티가 필요하다. 

 

위와 같은 나눔의 현장이 오후 예배 시간에 주어지길 소망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던져진다. 주일오전예배와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는 담임목사 위주의 교회에서 던져지는 질문이다. 성도 위주의 교회라면 다른 차원으로 질문이 던져진다. "나는 교회에 와서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는가?" 그렇다. 목사 중심이 아니라 성도 중심에서 질문을 던진다면, 메시지는 1개이든 5개이든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성도가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잡게끔 교회는 계속해서 먹이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일 오전 예배는 "선언과 선포의 시간"이라는 컨셉을 가지고자 한다. 한 주간 삶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반응이자, 그 역사를 따랐던 시간에 대한 회고다. 물론 역으로 그렇지 못한 통회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어쨌든 주일예배는 함께 선언하고 고백하고 선포하며 다음 한 주라는 시간에 대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내기로 결단하는 시간이다. 그것은 그것으로 마치면 된다. 이것을 가지고 더 확대하고자 할 때 무리가 되는 것이다. 이런 구분과 구별로 교회는 질서를 갖추게 된다. 그것이 2번의 답이 될 것이다. 

 

주일 오전 예배를 마친 성도는 다시금 결단의 마음을 가지고 이제 다른 성도를 만난다. 그 속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되겠는가. 자연스럽게 한 주간의 삶 속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주일예배를 중심으로 다음 주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 될 것이다. 때문에 나는 큐티본문을 미리 예습하는 시간으로 오후시간을 채우고 싶지 않다. 주일 오전예배 본문에 대해서 삶으로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에 대해서 서로 나누고 고백하고 선언하는 주일오전예배의 연장선으로 삼고 싶다. 이로써 같은 본문말씀을 가지고 각자의 삶속에서 어떤 반응이 있고 또 어떻게 구현할 것 인가에 대한 공교회성이라는 답, 3번을 답하게 된다. 

 

이런 나눔은 자연스럽게 4번을 답하게 된다. 이 나눔 속에서 함께 고백하고 선언하는 힘은 믿음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게 되고 또 서로 격려하게 된다. 이것은 자연스레 한주 동안 성도가 처한 상황과 환경에서 어떤 자세로 삶을 대할 것인가 답을 내리게끔, 고민하고 고뇌하게끔 한다. 이로써 개인의 부흥은 공동체의 부흥, 그리고 사회로의 부흥으로 이어지게 된다. 

 

주일오전예배와 오후예배(나눔과 교제의 코이노니아)의 연속성은 물리적 예배당 공간과 가정과 사회까지라는 공간적 연속성을 가지게끔 한다. 이것을 부흥으로 정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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