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네번째 재앙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파리재앙입니다. 3번째 이 재앙과 연속해서 곤충을 이용한 재앙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선포하실지 함께 살펴보시죠. 20절에 보니 여전히 하나님은 계획하신 것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장자나라로 세우고자 하셨던 약속을 반드시 이뤄내실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4번째 파리재앙은 독특한 점이 몇 군데 보입니다. 먼저 왜 파리를 사용하실까요? 21절을 보시죠.
21네가 만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과 네 집들에 파리 떼를 보내리니 애굽사람의 집집에 파리 떼가 가득할 것이며 그들이 사는 땅에도 그러하리라
여기서 파리떼라고 번역된 단어는 사실 파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파리로 대표되는 날곤충의 잡다한 떼를 말합니다. 우리가 여름에 러브버그떼로 밤에 조명이 켜진 곳에 수많은 곤충이 있는 것을 목격했죠. 사실 군부대를 경험하신 분들은 익숙합니다. 산속에 조명이 켜진 곳에 수많은 종류의 곤충과 나방이 서로 뒤엉켜 날아다니다 아침이 되면 그 주변에서 다 죽어있거든요. 지금 파리재앙은 이런 곤충의 발생을 말합니다. 게다가 이 재앙을 표현했던 시편78편에서는 이 파리떼가 살을 갈가먹었다고 표현합니다. 이 재앙보다 더 고통스러운 재앙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죠. 이렇게 온갖 곤충들이 섞여 사람을 물고 살을 헤집고 들어갑니다. 혼합됩니다. 네! 하나님은 이 재앙을 통해서 "애굽의 혼잡함"에 대해서 재앙을 선포하시며, 질서의 하나님이라는 복음을 선언하고자 하십니다. 22절부터 보시죠.
22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23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24여호와께서 그와 같이 하시니 무수한 파리가 바로의 궁과 그의 신하의 집과 애굽 온 땅에 이르니 파리로 말미암아 그 땅이 황폐하였더라
21절에 "애굽사람의 집집에 파리떼가 가득"할 것이지만, 22절에 보니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혼잡한 애굽과 질서있는 이스라엘을 구분하심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을 드러내시는 것이죠. 특히 23절에서는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이런 질문이 듭니다. 1-3째 재앙에서 이스라엘은 같이 고통을 받았던 것인가? 네, 함께 재앙을 당했던 것이죠. 4번째 재앙에 와서야 그들은 구별받게 되었던 겁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이때 이런 생각이 들었겠죠.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저 고통을 당했겠구나!"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감사하게 되었겠죠. 그러나 이것은 온전한 복음이 아닙니다. 고통에서 건저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선택하여 "장자나라로 세워주시는 하나님"을 그들을 함께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질서 속에서 복음을 믿으며 깨달으며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는 것이죠.
바울은 "33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14)라고 말했습니다. 질서는 곧 화평을 가지고 온다는 말이죠. 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별하시고 구분하시니 그들에게는 혼잡한 파리떼와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화평만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무질서한 애굽은 이스라엘을 학대하고 부르짖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분하셨고, 이스라엘을 장자나라로 삼아 그들을 가나안 땅에 보내어 그 땅으로 "화평케"하고자 하셨죠. 그렇게 우리는 질서와 화평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으로 나 자신이 옛사람과 정리되어야 하며, 새사람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러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복음으로 나 자신이 화평케 됨은 물론이거니와 복음으로 주변을 화평케 합니다. 나의 혼잡하고 무질서한 공간, 영역, 생각, 관계들이 있다면, 질서의 하나님으로 정리해나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본문으로 돌아옵니다.24절에서 보니 결국 애굽 온 땅에 파리로 황폐하게 됩니다. 이에 바로의 반응을 보시죠. 25절부터입니다. "25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바로의 반응이 많이 순해졌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시간을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공간은 애굽땅에서 하라는 고집을 보여줍니다. 모세의 제안은 사흘길을 광야로 나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었죠. 모세는 26절에 "그리함은 부당하나이다"라고 바로 반박을 합니다. 강대강 대결구도에서 점점 모세에게 우위가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더욱이 모세의 부연설명을 들어보시죠.
26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개역개정)
26모세가 말하였다. "이집트 사람들은 우리가 주 우리의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을 부정하게 여기므로 이 땅 안에서는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집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것을 희생제물로 바치면, 그들이 어찌 보고만 있겠습니까? 우리를 돌로 치지 않겠습니까?(새번역, 현대인의 성경은 지긋지긋하게라고 번역)
모세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에 대해서 애굽인들의 반응을 보이며, 마땅히 왜 구분되고 구별되어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계속해서 주제와 연결이 되지요. 이에 28절에서 바로는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무 멀리 가지 말라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라고 말합니다. 이에 모세는 29절에서 이전처럼 "거짓을 행하지"말라고까지 경고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파리떼를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과연 바로의 반응은 어떨까요? 32절을 보시죠. "32그러나 바로가 이 때에도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여전히 닫힌 마음으로 바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거짓이었죠. 끝까지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완강한 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바로의 마음은 점점 더 혼잡해지고 무질서해질 뿐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 우리는 홍해에서 수장당한 그들의 군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비상식적이고 비인격적인 결정과 판단이죠. 여러분, 우리가 회개하고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정돈된 삶과 질서있는 생활"을 위함입니다. 잘못된 것을 인정하고 고쳐 앞으로 더 단정된 삶을 가지고자 하는 성숙한 삶을 위한 결정이죠. 바울 또한 "40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14)고 가르쳤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심령 안에서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지혜를 주십니다. 우리의 오장육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깊은 죄까지도 다 끌어안아주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명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27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28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29모세가 이르되 내가 왕을 떠나가서 여호와께 간구하리니 내일이면 파리떼가 바로와 바로의 신하와 바로의 백성을 떠나려니와 바로는 이 백성을 보내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 다시 거짓을 행하지 마소서 하고30모세가 바로를 떠나 나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니31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그 파리 떼가 바로와 그의 신하와 그의 백성에게서 떠나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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