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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출애굽기

출 8:16-19

by 우루사야 2024. 9. 19.

세번째 재앙이 시작됩니다. 이번에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경고없이 재앙을 내리십니다. 여전히 대상은 "애굽 온 땅"입니다. 16절부터 보시죠. "16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애굽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무엇으로 애굽 온 땅에 복음을 선포하실까요? 바로 "이"였습니다. 머릿니로 많이들 아실 겁니다. 성경에서 나온 이가 그 이입니다. 머리카락 사이사이에서 기생하면서 사는 벌레죠. 이것들이 많아지면 사람이 가려워서 살 수가 없죠. 이 벌레를 통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생명화복, 처음과 나중되시는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실까요? 

여러분이 고대 이집트 박물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집트인들의 모습 중 하나가 "삭발된 머리"일 겁니다.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헤로도토스는 이런 이집트 문화에 대해서 "해충의 잠적을 두려워하여 제사장들은 3일에 한번씩 삭발과 면도를 하며 자신의 책무의 거룩성을 지키고자 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들의 도덕성과 종교성 강화를 위해 몸의 털을 미는 행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사실 이는 열에 매우 취약합니다. 그래서 따뜻한 물 목욕과 옷세척을 자주 하기만 해도 이는 떨어져 나갑니다. 애굽인들의 과도한 종교숭배행위였던 것이죠.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를 보내심으로써 그들의 종교적 행위로 스스로 생각하기에 결코 거룩해질 수 없고 또 깨끗해질 수 없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계속해서 접하게 되는 바리새인들을 향한 메시지가 무엇이었습니까? 바울이 가장 많이 비판하고 경계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인간의 종교적 행위로 "신의 구원에 진입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행위의 악독함은 첫째, 자기 스스로 신의 영역에 진입할 수 있다는 교만입니다. 둘째, 과도한 종교적 행위를 통해 타인과의 차별성을 둠으로써 자신을 높이고 타인을 낮추는 또 다른 교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행위는 마침내 "이중적 자아"라는 가면, 더 나아가 자아의 분열까지도 가져오게끔 합니다. 양의 탈을 쓴 늑대와 삯꾼을 양산해내죠.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에 근거한 "잘못된 종교행위"를 비판하고자 "이"를 어떻게 사용하십니까? 특히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가 올라오도록 하셨는지 보시죠. 17절입니다. 

17그들이 그대로 행할새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어 땅의 티끌을 치매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오르니

땅의 티끌먼지가 이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땅의 티끌먼지로 하나님은 원래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사람과 동물을 창조하셨죠. "7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1) 그런데 이번에 하나님은 그 티끌먼지를 가지고 이를 만드셔서 사람과 가축에게 올라오도록 하십니다. 인간의 행복은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에 있음을 말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지 않을 때 인간은 흙먼지로 돌아갈 뿐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은혜가 거두어질 때, 인간은 스스로의 인생에 억눌려 점점 자신을 갉아먹히게 될 뿐입니다. 마치 이가 올라와 가려워 스스로 긁어대듯이 말이죠. 18절을 보시죠. 

18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이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생긴지라

이번에는 요술사들이 따라하지도 못합니다. 당연히 문제해결도 못하지요. 요술사들은 이번 3번째 재앙으로 이제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한계가 여기까지인 것이지요. 그들이 바로를 미혹케 했고 혼잡하게 하려 했지만,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 특히 이 세상의 근원의 문제를 꺼내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더이상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바로가 마음을 돌릴까요? 19절입니다. 

19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변하지 않습니다. 바로의 완악함이 여전하고 또 그럴것이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도 여전히 동일합니다. 그러나 점점 상황은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19절 상반절에 보니 요술사들이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애굽이 점점 하나님을 인정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모세도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약속을 이루시는 모습들을 목격하며 하나님을 믿고 또 성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도 그러해야 하는 사람 중 하나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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