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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출애굽기

출 2:16-25

by 우루사야 2024. 9. 5.

한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훈련과정이 필요하듯이, 히브리민족이 이스라엘이라는 버젓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훈련과정이 필요합니다. 영토를 얻어야 하고, 민족이 번성하며, 이스라엘만의 주권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그 무대는 광야였습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불기둥과 구름기둥만 있을 뿐입니다. 그 시간을 살아내기 위한 지도자로는, 어떤 요건보다도 광야에서 하나님과 독대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 가장 알맞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애굽왕실에서 광야로 내보내셨던 것이죠. 오늘 본문에서 그 광야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6절부터 보시죠.

16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17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떼에게 먹이니라18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19그들이 이르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였나이다20아버지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 하였더라

모세는 한 순간에 밑바닥인생이 되어버렸습니다. 말 그대로 밑바닥입니다. 잘 곳도 먹을 것도 없는 노숙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가운데 선의를 베풀어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 가문의 여인들을 만나게 되었고, 거기서 선의를 베풀며 호의적인 관계를 맺게 됩니다. 여러분, 제가 서두에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국가의 모습을 갖춰갈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이에 있어서 모세가 자신의 공동체, 자신의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광야에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태초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서로간의 사랑과 섬김을 닮은 세상을 창조하셨고, 모세는 이 광야에서 선의로 시작해 가정을 시작하였으며, 다윗또한 사울에게 쫓겨 광야에 있었지만 그곳에서 비루하고 가난한 자를 받으며 나라의 근간을 만들어갔으며, 예수님은 40일 금식을 하며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 사탄을 물리쳐 인간의 몸으로도 놀라운 영적 공동체를 시작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이렇게 시작해야 합니다. 만약 내 신앙이 잘못된 출발점이라면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다 내려놓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사랑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렇게 모세가 가정을 이룹니다. 21절부터 입니다. 

21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22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모세 또한 자신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계심을 고백합니다. 아들의 이름 뜻을 그렇게 지음으로써 자신의 신앙고백을, 이 가정의 출발점을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이스라엘 나라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겠죠. 그런 점에서 모세가 타국과 나그네라고 표현한 것이 눈에 띄입니다. 모세는 미디안광야에서 가정을 이뤄냈다고 해서 그곳을 자신의 고향으로 보지 않습니다. 자신의 본국과 고향은 따로 있다고 말하는 것이죠. 사실 애굽왕실도 그의 본향이 아니죠. 히브리족속으로써 애굽인들이 가득한 애굽왕실 또한 그에게는 타국이요 나그네였습니다. 그런데 더 크게 보면 히브리족속 모두가 타국에서 나그네생활을 400년간 이어왔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훈련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의 진짜 정체성, 즉 히브리족속인 것을 넘어서서 나그네 인생이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을 가진 자로 점점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돌아갈 곳은 바로왕이 있는 왕궁도 아니고, 이스라엘 민족이 사는 애굽 땅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신 본향으로 가기 위한 "나그네"일 뿐입니다. 결코 정착하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본국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고, 우리의 신앙은 그곳에 돌아가는 나그네인생일 겁니다. 그래서 23절부터 모세가 왜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은 미디안 광야가 자신의 본향이 될 수 없는지, 왜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이 있는 곳이 자신이 가야할 곳인지 23절에서부터 말합니다.

23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24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25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여러분. 우리가 가야할 곳은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돌보시는 그곳입니다. 정착하고자 하는 인생이 아니라 나그네로써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곳으로 가는 인생이 우리네 인생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신앙의 선배들이,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우리의 근간도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했음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오셨습니다. 그것들은 또 있다고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들입니다. 나에게 무엇이 생겼다고 해서 나의 본향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곳을 따라 항상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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