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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출애굽기

출 2:11-15

by 우루사야 2024. 9. 4.

지난 시간에 모세의 유년시절을 살펴봤습니다. 바로의 딸에게 입양되어 왕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로 모세는 왕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배경과 환경에 있어서 모자랄 것이 없었죠. 그런데 무언가 하나가 부족했나 봅니다.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큰 구멍이 나있었나 봅니다. 살인을 저지르게 되기까지 합니다. 11-12절을 보시죠. 

11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12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이스라엘 사람과 생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이스라엘민족 정체성"이 있었나 봅니다.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 끓어 오르는 분노를 느끼다 못해 애굽 사람을 죽이고 암매장까지 하고야 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을 감당하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른 모세였습니다. 모세의 살인동기는 "고통받는 히브리사람"이었습니다. 왕자로 살면서도 동족 히브리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에 대한 마음에 의문과 허탈, 분노가 있었던 것이죠.

네, 이것은 모세의 정체성의 문제였습니다. 돈이나 권력과 같은 1차원적인 것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것의 문제가 아니었던 겁니다. '모든 히브리인들이 저렇게 고통받고 있는데, 왜 나는 여기 이 자리에 있는가?'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외에는 없었던 것이죠. 결국 모세는 문제해결을 위한 한발자국도 떼지 못한채로 사고를 치고야 만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조금 더 명확하게 모세의 의중을 밝혀줍니다. 

24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25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11)

 

모세가 단순간의 분노로 사람을 죽였다기 보다는 명확한 원인이 있다는 것이죠. "믿음으로 장성"했다는 것을 통해 모세가 가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힌트를 가지고 있었고, 하여 모세가 자신의 결정으로 왕자의 자리에서 나왔다고 밝힙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을 택함으로써, 출애굽의 시발점으로써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네, 하나님의 것이 되는 길에는 고난이 항상 함께 합니다. 모세가 애굽왕실의 왕자에서 하나님나라의 왕으로써 서는데는 또 다른 훈련이 필요했던 것이죠. 

여러분, 바울도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가시"를 제하여 줄 것을 요청했지만 하나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답을 얻을 뿐이었습니다.(고후13:9) 이를 두고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만하지 않게 브레이크를 주셨고(7절), 더 나아가 약한 가운데 더 성숙한 강함을 주시기 위함이었음을 말해줍니다. (10절)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바울이 그러했듯이 신앙인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고통의 길을 걸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약해짐으로써 더 성숙한 강함으로 나아갈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우리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모세의 운명은 아무리 왕일찌라도 "노예 히브리민족 정체성"이었던 것이죠. 그것을 받아들이고 낮아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었던 훈련의 장이었던 겁니다. 13절부터 모세의 훈련의 장이 펼쳐집니다. 

13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15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모세가 의도했던 것과 달리 히브리인들은 모세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바로는 안그래도 히브리인들의 확장세가 염려되었는데 모세가 애굽인을 죽이고 히브리인을 구했다는 사실에 모세를 잡고자 합니다. 모세 입장에서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가는 것이 납득이 안되고 이해가 안될 것입니다. 자기자신의 선택과 행동이 후회될 법도 합니다. 성숙한 믿음으로 해소되어야 할 시점입니다. 훈련을 거쳐야만 나중에 해석될 수 있는 시간들인 것이죠. 미숙하고 많이 휘청거리는 발걸음이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이 또한 믿음의 발걸음이요 선택이었다고 말해주었던 것이죠.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내가 내렸던 결정치곤 너무 상황이 커져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태가 내 손을 떠나 흘러갈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저히 해석도 되지 않을 뿐더러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버겁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실 때에는 "피할 길"을 주십니다. 그 시간까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함으로 기다림으로써 우리는 점점 성숙해집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것이 되어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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