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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빌립보서

빌 1:19-26

by 우루사야 2024. 8. 2.

여러분. 성경에서 많은 인물들이 우리에게 신앙이 무엇인지 또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해주기도 하고 또 삶으로 보여주기도 하죠. 그러면서 우리는 간혹 그 성경인물들이 가리키는 하나님이 아니라 가리키는 손가락에 집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목격하면서 그 자리에 초막을 지으려고 하는 기초적인 반응과 같은 것이죠. 우리는 좀 더 성숙하게 성경의 인물들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묵상하고 적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바울의 편지를 통해 그의 신앙과 고백을 접하고 있죠. 이것을 통해 바울을 보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신앙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와 신앙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의 고백과 신앙이 돋보입니다. 먼저 21절을 보시죠.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 문장에서 강조문은 "죽는 것도 유익함"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 중에 죽는 것이 유익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앞에 전제가 붙으면 말이 달라집니다. 종종 뉴스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죽을 각오로 사건현장에 뛰어드는 일반인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그들은 오로지 "사람의 생명의 존귀함"때문에 죽는 것을 유익하게 여겼던 것이죠. 21절에서 바울이 죽는 것이 유익한 이유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합니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네,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죽는 것도 유익하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과연 바울에게 예수가 어떤 존재이기에 이렇게까지 말하는 겁니까? 

19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특히 "내 몸에서" 즉 자신의 실생활, 말과 행동, 판단과 결정에서 예수가 나타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19절과 같이 예수 안에서 "빌립보 교회의 간구기도"와 "예수의 영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바울의 앞길이 열리도록 해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구원이라고 표현된 이것, 즉 바울이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을 말하는지 아니면 죽어서 천국을 가는 구원을 말하는지 명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바울은 교회의 기도와 삼위하나님의 도우심이 자신의 인생에 유익함이 있기 때문에, 교회와 하나님을 위해서 죽는 것쯤이야 유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무언가를 희생한다는 것.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교회 구성원들로부터 은혜를 받은 자들은 희생을 합니다. 나의 소득을 기꺼이 교회의 활동을 위해서 헌신하며,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사역의 유지를 위해서 희생합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예수가 존귀하게 되는 것을 더 유익하게"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네, 사람은 더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그런 점에서 과연 나의 계산은 무엇을 향하게 하는지 돌아보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과 교회의 활동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가지게 하는지 고민해보길 소망합니다. 바울은 그런 점에서 사나 죽으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22절부터입니다. 

22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23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24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바울은 살아생전에 빌립보 교회와 다른 교회들을 섬기며 전도의 열매를 얻는 것도 귀한 일이고, 세상을 떠나서 저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일은 당연히 더 좋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어쨌든 바울에게 이 두가지는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할 뿐입니다. 바울이 할 수 없는 일,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 바울은 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예수의 복음에 대해서, 성령과 교회와 하나됨으로 살아가는 풍성한 인생과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 대한 확신이 이런 고백을 만들어냅니다. 마지막 25-26절입니다. 

25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26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것, 너희 자랑. 이런 단어들. 서로 만나 예수 안에서의 삶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 격려하고 기도하고 위로하는 그 시간. 바울은 그 시간이 얼마나 풍성할 것인지에 대해서 기대합니다. 믿음의 진보가 있고 기쁨의 시간이 될 것이며, 풍성한 교제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성도간의 교제를 돌아봅니다. 물론 바울과 빌립보 교인간의 만남이 오랜만입니다. 그래서 더 애틋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근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는 신앙이 전제되었을 때 나눌 수 있는 교제임을 살펴보면,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또 우리의 교제생활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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