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주일_마르다
제목 : 가정, 하나님의 보물창고
본문 : 에베소서 5장32절 - 6장 2절
1. 서론
1) 예화
요즘 가족예능이 참 많죠. 연인관계나 부부, 자녀양육뿐만 아니라 이혼위기가정이나 재혼, 더 나아가 사돈지간, 살림하는 남자에 관한 예능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가족예능이 많아진 이유로는 각자가 가진 문제와 갈등이 미디어를 통해서 “아 나 혼자만 힘든게 아니었구나”라는 공감대를 형성해주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만큼 모든 사람들이 가족에 관해서는 일정한 고민과 갈등이 있다는 의미겠죠.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가족예능에서 공감대를 얻고 위로를 받거나 내 가정문제의 해결책을 구하기보다는, 예능으로써 소비하는데까지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2) 주제
그런 점에서 성경에서 가족의 중요성은 매우 심도 깊게 다뤄집니다. 성경첫책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창조 후에 가장 첫번째로 하신 일이 “가족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라는 부부가 그러합니다. 신약 다량의 책을 쓴 바울은 감격하면서 “이 비밀이 크도다”(엡5:32)라고 말하며, “가족”이라는 것이 신자에게 매우 중요한 신앙생활이라고 말합니다. 그 밖에도 잠언은 부모로부터 교훈을 들어야 할 것을 말하며, 시편은 자식이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이요 상급이라고 말하며, 십계명에는 부모공경을 인간관계계명에서 가장 첫번째에 등장합니다.
기독교 초창기에서 각 교회가 리더를 뽑을 때 공통된 기준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은 “건강한 가정생활”이었습니다. 가정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면 교회 또한 다스리지 못할 것이라는 원리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죠. 네, 신자에게 가정생활은 곧 신앙생활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앙생활은 예배당 안에서만 이뤄진다거나, 교회에서 배운 것을 적용하기 위한 연습공간으로 가정을 말하지 않습니다. 가정은 곧 나의 영성이요 하나님이 역사하는 공간인 것입니다.
3) 본론잇기
그런 점에서 가정의 달이자 부부주일을 맞이해서 오늘은 신자의 가정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특히 바울이 말하는 “큰 비밀”이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함께 살펴보면서 내가 신자로써 가정을 어떻게 대하고 있고 또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가족예능으로는 또 오은영 박사님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우리 가족에 관한 아픔과 상처를 우리가 신자로써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신앙의 길라잡이를 마련할 수 있는 오늘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 부부라는 모형
모형을 가지고 업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사는 신체마네킹이라는 모형으로 의학공부를 하고, 도시설계자들이나 건축가들은 축소된 도시모형이나 건축모형을 만들어 설계를 합니다. 사회학자들이나 정치가들은 설문조사를 통해서 민심을 파악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시가 되어주는 축소된 모형을 통해서 진짜배기에 대해서 다루곤 하죠. 모형이 또 좋은 것은 우리가 아무리 시야가 넓어도 지구 전체를 볼 수 없지만, 지구본을 통해서 지구 전체에 대해서 조망할 수 있듯이 말이죠.
하나님이 우리를 가르치실 때도 그러합니다. 한 예시 또는 모형을 통해서 진짜를 말하고자 하십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성막입니다. 성막은 천국의 모형이라고까지 하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죽어서만 갈 수 있는 천국에 대해서 성막으로 제시하심으로써 신자들이 천국을 맛 볼 수 있게 하셨죠. 그럼 다른 것은 없을까요? 바로 가정이 그러합니다. 성막이 천국의 모형이라면, 가정은 천국 안에서 가장 중요한 모임의 모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대한 모형입니다. 그렇듯이 하나님도 성도들을 가르치실 몇가지 모형을 가지고 가르치십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가정인 것이죠.
“23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부부사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대표자이며 신자는 그 대표자 안에 소속원입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되어 대표자로써 십자가에서 모든 신자구성원들의 죄를 감당하셨습니다. 군림한 것이 아니라 희생하는 리더였습니다. 때문에 그 대표자의 희생의 덕을 보려면, 그 대표자를 존중하고 그 희생을 기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서 대표자의 희생으로 무언가 유익을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조롱이요 몰상식이며 처참한 능멸의 수준을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중요한 그리스도와 신자의 관계를 가르치기 위해서 천지창조 때부터 한 모형이자 교보재를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남편과 아내였습니다. “24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하듯, ~같이. 이런 표현들을 통해서 예수와 신자로서 나의 관계가 곧 내가 가정에서의 부부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임을 바로 알 수 있는 것이겠죠.
만약 부부관계 속에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있으십니까? 첫째, 부부관계는 모형입니다. 모형이 부서졌다고 해서 진짜가 부서지지 않습니다. 진짜 하나님과의 관계를 향한 본질을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형은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 모형에 충실하고자 해야 하겠습니다. 갈라진 것을 붙이고, 상처난 것을 고치고, 흔들리는 곳을 고정시키면서 말이죠. 그렇게 하나하나 고쳐나갈 때 “예수와 나 사이의 관계”로부터 배워서 나아가는 것이죠.
2) 부모라는 언약
가정에는 부부말고 또 다른 모형이 있습니다. 바로 부모자식간입니다. 부모자식간은 좀 다른 양상의 모형입니다. 부부는 전혀 관계가 없던 남남이 만나 하나가 되어가며 하나님이 쓰시는 모형이 되어간다면, 부자지간은 하나였던 서로가 점점 멀어지는 사이가 되면서 하나님이 쓰시는 모형이 됩니다. 다만 “약속”이 남습니다. 부모가 자식이 결혼을 통해서 독립함으로 점점 떨어져가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는 “계약으로 묶여있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런 점에서 이 계약이 모형이겠죠.
부동산에서 작성하는 계약서가, 거래처와의 계약서가, 은행에서 쓰는 계약서가 앞으로 양쪽사이를 말해주듯, 부자지간에 대해 “3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이 발언은 하나님이 십계명에 쓰신 것을 인용한 것이에요. 하나님이 십계명에 이 계약서를 설계해서 넣으심으로써 인류에게 “부자지간”이라는 하나님의 설계와 주권으로 이 땅이 운영되고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죠.
하나님은 두 모형을 가정에 두셨습니다. 사람은 이 가정 안에서 수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는 것이죠. 배반자인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듯이 남남이었던 남녀가 서로 한몸이 되어 그 어떤 것으로도 나눌 수 없는 사이가 부부입니다. 또 가장 연약한 한 존재가 가정에서 태어나도 부모의 사랑으로 어엿한 한 독립체, 특히 또 다른 생명을 낳을 수 있는 한 성인이 되었을 때, 그렇게 부모의 은혜를 덧입어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 장수하듯이, 교회는 새생명을 낳아 그 새생명이 또 다른 이를 섬기며 영혼을 구할 때 진정한 부흥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된다는 원리를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이 본문들을 말하면서 계속해서 “복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합니다. 남편은 피차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럼 누구를 향해 복종하고 순종하는 겁니까? 우리가 재판장에 가면 재판장이 입장할 때 모두가 일어섭니다. 그것은 재판장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재판장이 가지고 오는 헌법과 법률체계에 대한 서로의 동의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에서 부부와 부모사이에 서로 복종은 그 사이에 담겨져있는 하나님의 주권과 약속에 대한 존중으로써 서로 피차 복종하고 또 존중하는 것이죠.
때로는 나의 부모가 나의 배우자가 나의 자녀가 잘못되고 흠이 있고 그릇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은 가정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모든 가정이 문제를 가지고 또 갈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복종과 순종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이렇게 만들어놓으신 원리”에 대한 복종입니다. 이것을 믿으며 문제를 하나하나 포기하지 않고 풀어내가기 위해 기도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섬김으로써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죠.
3) 적용
여러분이 잘 아시는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으로 사망했죠. 췌장암이 치료가 어려운 것을 유명하지만 초기에 발견하기도 했고 또 스티브 잡스의 재력정도면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잡스는 채식주의자로써 식이요법으로 낫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9개월이 지나서야 치료를 받게 되었지만, 암이 너무 많이 전이된 나머지 결국 죽고야 말았습니다. 박문호 박사는 그런 잡스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그의 “직관력”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잡스의 뛰어난 직관력이 자신의 전문분야인 전자기기 설계와 디자인에 쓰여짐으로써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자신이 잘 모르는 영역에까지 씀으로써 잘못된 판단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이죠.
공기가 항상 내 주변에 있고, 해와 달이 매일 뜨고 지며, 물은 항상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이 당연하듯이 내 주변에 있는 가족과 가정이 항상 우리에게 있음이 매우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속 안에는 너무나도 많은 신비가 있고 선물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가정에서 배워야 합니다. 나와 잘 통하지 않는 것 같은 배우자와 함께 지내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자녀의 행실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교회가 날 품어준 것을 기억합니다. 나는 결코 혼자 태어날 수도 또 혼자 클 수도 없습니다. 그럴 사람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인생길에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내가 모든 것을 아는 것 마냥 잘못된 직관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인생은 깨어지기 시작함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3. 결론
오은영 박사님의 멘토링도 좋고, 좋은 학군에서 좋은 친구들의 영향으로 자녀가 성장할 수 있게끔 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이라는 구성자체가 “하나님의 신비로운 계획이 담긴 모형”임을 믿고 또 이해하는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가 교회신자인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을 기억하며 아내를 끝없이 사랑합니다. 자녀를 낳고 기르며 대화하고 몸을 부비며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몸무게가 어떠한지, 이는 새로 났는지, 지금 공부하는 것에 어려움과 감정은 어떠한지 하나하나 살펴보며 이 자녀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또 다른 한 생명을 낳고 기를 수 있는 성숙한 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양육합니다. 마치 내가 교회에서 복음을 듣고 구원의 확신을 얻어 또 다른 이에게 그 복음을 전했듯이 말이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즉 내 노력여하나 내 근심과 염려로는 한치도 이룰 수 없는 것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가정의 중요성이 점점 사라져가는 한국내 상황에서 이런 성경의 교훈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많을 것입니다.